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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외국어 번역에서 온 잘못된 습관, '번역 투' - 김민지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9. 19.

외국어 번역에서 온 잘못된 습관, ‘번역 투’

 

한글문화연대 10기 기자단 김민지

edithmj918@gmail.com

 

좋은 문장, 좋은 글은 읽기 쉽고 간단한 글이다. 그런데 누구나 문법적 오류 외에 위화감이나 어색함을 느끼는 글을 읽은 경험이 많을 것이다. 또 직접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지 않고 불편함을 주는 작문 습관이 나타나곤 한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가장 대표적으로 번역 투가 있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영향을 받을 때는 하나의 큰 관용 표현이 통째로 들어오기도 하고 문형 구조가 바뀌기도 한다. 특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외국어의 문장 구조에 우리말을 끼워 넣게 되면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생겨난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탓에 우리말인 척 숨은 이 번역 투를 알아보자.


① 피동형

능동형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 한국어와 다르게 영어와 일본어에서는 피동 표현이 많다. 주어와 목적어의 자리를 바꿔보자.

 

예시 1) 그 아이들은 보육원에 의해 보호되었다. → 보육원은 그 아이들을 보호했다.

예시 2) 시위는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 경찰은 시위를 진압했다.

 

피동형 문장을 능동형으로 바꾸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주어와 목적어 관계의 꼬인 의미가 풀리면서, 직관적인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예시 3) 새로운 정책팀에는 유연한 자세가 요구된다. → 새로운 정책팀에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 요구되다’의 표현은 영어의 ‘be needed to’, ‘be required of’ 등에서 왔다. 피동 문장을 자주 사용하면, 글의 힘이 떨어져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가 필요하다’로 바꿔 쓰는 것이 알맞다.


② ~로 인하여, ~에 의하여

예시 1)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결정한다. →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이들은 모두 영어의 ‘by~’나 일본어의 ‘~によって’를 직역한 경우다. 일본어에서는 이를 ‘후치사 표현’이라 부른다. 조사와 동사의 활용형이 결합하여 하나의 문법 단위처럼 쓰인다. 한국어에서 자주 보이긴 하지만 일본어에서 넘어온 표현으로, 꼭 필요한 문법적 요소는 아니다. 문장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형태도 피동으로 바뀌었다.


③ ~에 대하여, ~에 관하여

영어의 'about', 일본어의 '~について', '~に対して' 등의 표현이다. 다음과 같이 줄여 쓰면 문장 길이가 짧아지고 간단해 진다.

 

예시 1) 다음 물음에 대해 답하시오. →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예시 2)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 이 사안에 관심을 가졌다.


④ 가지다

예시 1) 고모는 두 명을 아들을 가지고 있다. → 고모에게는 두 명을 아들이 있다.

예시 2) 우리는 하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우리는 하나라는 의미다.

 

유독 빈번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영어의 ‘have’나 ‘take’를 그대로 직역했다.


⑤ ~를 위하여

예시 1) 나는 미국 여행을 가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 나는 미국 여행 가려고 영어를 공부했다.

예시 2)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양국의 신뢰가 중요하다. → 경제를 회복하려면 양국의 신뢰가 중요하다.

 

이들 표현도 영어 'for', 'in behalf of', 'in the interest of' 등의 번역에서 왔다. 앞 내용을 강조할 때 주로 쓴다.


⑥ ~에(게) 있어서, ~에 있다

보통 영어의 'for', 'in~ing', 일본어의 '~にあって'나 '~において(~に於て)'를 번역한 표현이다. ‘존재하다’의 의미가 추가되어 길어졌다.

 

예시 1)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적절한 기준이 필요하다. → 모든 분야에서 적절한 기준이 필요하다.

예시 2) 학생들은 공부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 학생들은 공부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같이 순화하기를 권장한다.


⑦ ~의 경우

표준어이지만 대체로 영어의 ‘in case of’나 일본어의 '~の場合’를 직역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은, ~는 등으로 간단히 바꿔 쓸 수 있다. 종종 구어체로 ‘~같은 경우에는’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


⑧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시1) 성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성공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어 ‘must be’에서 나온 표현으로, 부정의 의미가 두 번이나 나왔다. 영어에서는 이런 이중부정을 강한 긍정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직관적인 이해가 힘들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긍정의 의미를 바로 사용하는 것이 더욱 우리말다운 표현이다.


번역 투는 가독성이 떨어지고, 우리말의 고유 문체를 파괴한다. 이오덕 선생은 번역 투의 글을 ‘병든 글’이라고 했다. 글을 쓸 때 자신의 문장을 꼼꼼히 살펴보자. 별 생각 없이 변역 투를 남용하지는 않았는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더욱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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