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영어'상용'도시 부산, 이대로 괜찮을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10기 정채린 기자
영어상용도시란 무엇인가
영어하기 편한 도시, 영어상용도시. 모두 박형준 부산시장과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이 2030년 세계 박람회를 앞두고 내놓은 정책이다. 해당 정책은 박형준 부산시장의 주요 공약으로, 2022년 8월 정책 발표 후 전국의 국어 단체와 부산 시민 단체의 반발이 일자, 11월‘영어상용도시’의 명칭을 '영어하기 편한 도시'로 변경해 추진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이 내놓은 전략은 4가지로, △부산형 영어 공교육 혁신 △시민 영어역량 강화 △영어상용도시 인프라와 환경 조성 △영어상용도시 공공부문 선도이다. 특히 영어 공교육 혁신을 위해 ‘부산형 영어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지원, 영어 교원 전문성 강화 및 원어민 교사 확보·관리, 교육과정 내외 영어교육 활성화, 영어 동아리 운영 지원 및 국제교류 등으로 영어 체험프로그램 확대’ 등의 계획을 밝혔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시민들의 사교육 부담을 완화하고, 어디서나 편리하게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중심지 조성과 기업 유치, 2030부산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부산시 입장이다.
시민이 아닌 외국인을 위해 시작한 정책이라고?
전략을 살펴보면 마치 부산시민을 위한 정책 같지만, 사실 이러한 정책이 시작된 이유는 따로 있다. 육회를 ‘six times', 곰탕을 'bear stew'로 표기하는 등, 과거 국내 한식당에서 메뉴판에 엉터리 영어 번역문을 병기한 일이 언론 보도를 통해 크게 알려진 적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웃고 넘어갔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말의 영어 번역문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불친절한 영어 표기 때문에 불편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지자체들은 영어를 공영화처럼 사용해 외국인들이 불편하지 않게 머물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한다면, 궁극적으로 국제 행사나 외국 기업 유치 등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특히 부산광역시와 인천광역시는 경제자유구역에 조성된 국제도시이기에 영어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급격한 영어 상용화 추진은 시민 단체 등의 반발을 일으켰다.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으로 우리말과 문화의 정체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한글문화연대 등 76개 한글 관련 단체와 부산 작가회의 등 지역 34개 시민 단체는 '부산 영어 상용도시 정책 반대 국민연합'을 결성하였으며, 공동 기자회견, 시청 방문 등의 활동으로 정책 철회를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이들 단체는 "영어권 식민지였던 나라나 북유럽처럼 인구가 적은데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해야 해 불가피하게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을 강행하려는 무모한 실험”이라며 "예산 낭비와 시민 불편, 영어 남용도시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영어 상용을 추진하면 '공문서 등은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를 사용해 한글로 작성하라'는 국어기본법 제14조 규정도 밥 먹듯이 어길 것”이라며 "영어 능력이 떨어지는 시민의 알권리를 해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상용의 사전적 의미는 ‘일상적으로 씀’이다. 일상적으로 영어를 쓴다면 공공기관의 영어 사용 빈도수도 높아질 수 있으며 이는 부산 시민의 기본적인 알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외국인은 편하고 내국인(부산 시민)은 부담스러운 정책은 과연 누굴 위한 정책일까.
자칫 외국어 남용으로 한국어가 위축되고, 한글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부산시청의 실무자들은 전국 국어단체, 부산시민사회단체과 평행선을 달리며 격렬한 논쟁을 펼치는 중이다. 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영어상용도시 정책 부산 시민 40%가 반대
㈜티앤오코리아(여론조사 전문기관)를 통해 한글단체가 부산 시민 만18~69세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벌인 결과, ‘영어상용도시 부산’이라는 정책에 ‘반대’가 40.9%, ‘찬성’이 27.6%였다. 안내표지판 등 공공시설물 영어 표기 강화의 유용성에 대한 응답은 '불편할 것이다'가 57.6%였고, 공문서와 정책 및 행사 이름 등에 영어가 많이 쓰이면 '불편하다'는 응답은 65.4%를 기록했다. 정작 부산 시민들은 불편한 일상생활을 우려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글 단체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영어상용도시 사업이 실행된다면 시민의 기본적인 알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언어는 곧 인권이자 기본권으로, 공공언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을 사용해야 한다”며 “공공언어 순화 정책의 효과는 지자체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만큼, 공문서 작성자 및 공공언어 사용자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공언어가 어려우면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이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용’은 무서운 단어이며, 도시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부산이 외국어 오남용 도시 1등이라고?
남용의 우려가 큰 데에는 부산시의 이전 실책도 한몫한다. 한글문화연대가 지난해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외국어 오남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부산은 외국어 오남용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라는 오명을 얻었다. 부산시의 불필요한 외국어 표기 사용 비율은 75%로 지자체 중 가장 높았는데, 이는 전국 평균(54%)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나 국적 불명 언어로 표기하는 사례가 월등히 많았다는 의미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부산은 현재도 시설이나 지역 이름 중 영어 이름이 엄청나다. 지자체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이것이 더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라며 “이는 많은 시민의 안전과 의사소통, 그리고 공적 정보를 얻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끼칠 것이고 결국 ‘영어남용정책’이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더불어 “2030세계 박람회를 겨냥한 거라면 인력을 따로 뽑아서 훈련을 시키면 될 일이지 부산 시민들에게 요구할 사항은 아니라며 외국인들이 보고 싶은 것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다.”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하고 성과는 못 거두면서 그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정책이다.”라며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언어를 가장 바르게 사용하는 지역인 울산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드물게 ‘한글’ 전담 조직이 있다. 중구청 문화관광과에는 한글도시업무를 총괄하는 한글도시계장 직함을 비롯해 한글도시 홍보전략 등을 수립, 추진하는 주무관이 있다. 2021년부터 직원들의 국어 교육을 의무화한 데 이어 부서 공문서의 오류를 찾아내 개선한 결과, 울산의 외국어 오남용 비율은 20%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부산은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울산의 모범사례를 본받아 공공언어 개선에 힘써야 할 때이지, 영어상용도시 정책을 펼칠 때가 아니다. 정말 시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시민의 알권리와 인권을 위해 쉬운 우리말 쓰기는 필수이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라면 더더욱.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할 수 있는 언어를 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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