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말 용어를 쓰지 않는 이유
한글문화연대 10기 기자 박현아
우리의 일상 대화를 살펴보면 외래어가 많이 숨어 있다. 이를 이용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면 벌칙을 받는 우리말 게임을 하기도 한다. 외래어는 의류와 화장품 마케팅 분야에서 특히 많이 사용된다. 의류 분야의 예로 ‘스트릿 패션(Street Fashion)’이 있다. 스트릿 패션을 번역해보면 길거리 패션이다. 즉, 격식을 차리지 않은 편한 차림을 말한다. 화장품 분야를 살펴보면 우리말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화장품 누리집에 들어가면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만 표기된 곳도 많다. 화장품 종류는 ‘틴트, 파운데이션, 팩트’ 등으로 모두 외래어이며 마땅한 우리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틴트’의 색상으로는 ‘슬리피 코야’, ‘피치 알제이’, ‘밀크티 슈키’ 등 다양하다. 이 색상들을 우리말로 바꾸면 ‘연한 분홍’ ‘부드러운 분홍’, ‘진한 분홍’이다. 해당 제품이 가진 섬세한 색 표현과 감성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물론 우리말을 사용하여 ‘다홍빛 구름’, ‘벽돌 꽃잎’, ‘솜사탕 분홍’ 등으로 특색있게 표현해내는 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각 기업들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소비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말로 화장품의 이름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말은 ‘고급스럽고 전통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반면 외래어는 ‘신선하고 유행에 민감한 모습’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유행을 중요시하는 10대 화장품 기업에는 우리말 사용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의학 분야에서도 외래어를 많이 볼 수 있다. 정형외과라는 뜻의 ‘OS’, 일반 외과를 뜻하는‘GS’가 있다. 이와 같은 외래어는 의료 전문인 사이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쓰이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도 많이 쓰이는 의학 외래어로는 ‘MRI’가 있다. MRI를 우리말로 바꾸면 ‘자기공명영상법’이다. 이는 우리말이지만, 일반인 에게는 쉬운 표현이 아니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람이 쉽고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의학용어 개념 자체가 어려운 점도 있지만 쉬운 우리말로 바꾸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외래어가 일상어로 정착하게 된 이유로는 외국에서 들어온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외국에서 생긴 개념이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 우리말로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예시로 ‘가스라이팅’, ‘더치페이’가 있다. 먼저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우리말로 ‘심리적 지배’로 바꿀 수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실제 의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이미 자주 쓰는 언어로 자리잡아 의미가 쉽게 와닿는다. 반면, ‘심리적 지배’는 실제 의미를 바로 나타내고 있음에도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 ‘심리적 지배’라는 단어 대신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최초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더치페이’라는 단어는 비용을 각자 서로 부담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더치페이’를 우리말로 바꾸면 ‘각자내기’로 쓸 수 있다. 단어 자체로만 보면 ‘각자내기’가 의미를 직접 드러내는 말이다. 하지만 ‘더치페이’라는 단어가 미디어에서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더치페이’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렇듯 신생 단어는 최초 보도의 형태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한번 자리잡으면 쉽게 변화하기 어렵다.
의류와 화장품 같은 특정 산업은 섬세한 표현과 감성이 중요한 만큼 외래어를 아예 제외할 순 없을 것이다. 해외 소비자층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거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학 용어 같은 경우에는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연령이나 교육 수준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의미전달을 하기에는 외래어보다는 우리말이 유용하다. 맨 처음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꿀 때 사람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의미를 섬세하게 담고 있는 단어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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