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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소설 속 차별적 표현 바꾸기 -시대에 맞는 변화인가, 원작 훼손인가 - 김가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9. 19.

소설 속 차별적 표현 바꾸기

-시대에 맞는 변화인가, 원작 훼손인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10기 김가현 기자

Jenny001205@naver.com

 

영국 아동문학의 거장 로알드 달(1916~1990)의 작품,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마틸다'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소설 속 외모와 성별, 인종에 대한 편견이 담겨 있거나 비하하는 표현들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고 있다. 원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는 인물을 묘사하며 '뚱뚱하다'라는 뜻의 팻'(Fat)'으로 표현했는데 최근 재출간된 책에서는 간접적이고 중립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 '거대한(enormous)'으로 바뀌었다. 원작자 로알드 달은 1990년 숨졌지만, 원작의 판권을 가진 출판사들이 시대상을 반영해 차별의 소지가 있는 표현들을 바꾼 것이다. 이를 두고 시대에 맞는 변화라는 의견도 있지만, 현대의 잣대로 작품을 수정하는 것은 검열이라는 비판도 있다. 소설 속 차별적 표현 바꾸기는 과연 바람직할까?

 

 

시대에 맞는 변화이다

로알드 달의 소설 '마틸다'에서 등장인물 트런치불 선생을 표현한 '가장 강력한 여성(most formidable female)'은 생물학적 여성을 의미하는 '피메일(female)' 대신 사회적 성별을 뜻하는 '우먼(woman)'으로 수정됐다.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에 맞게 작품이 수정된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출간하는 케임브리지 사전에 '우먼(woman)'을 검색하면 '성인 여자'라는 뜻 외에 다른 설명이 덧붙는다. 두 번째 뜻으로 '출생 때는 다른 성을 갖고 태어났더라도, 스스로 여성으로 정의하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사전 편집자가 실제로 쓰이는 단어의 용법을 살펴보고 반영한 것이다. 시대에 따라 변화된 사람들의 인식은 오래된 소설에도 영향을 미쳐 원작을 수정하게 했다.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는 차별적인 표현을 바꿔서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작 훼손이다

또 다른 고전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출판사는 최신판의 서두에 인종 차별적인 내용이 독자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을 추가했다. 노예 제도와 백인 우월주의를 미화한 표현이 일부 독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롭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원작을 바꾸는 것은 원작 훼손이라 보고 차별적 표현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경고문 뒤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백인 우월적 요소를 설명하며 비판하는 논문 형식의 글을 추가해 오늘날의 시각을 반영했다. 고전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가 있으므로 문학작품의 내용을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바꾸면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원작 개정 작업은 영상 콘텐츠에서도 활발하다. 과거의 고정 관념이 담긴 콘텐츠로 시청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안내 문구를 붙이던 디즈니는 최근에 원작의 인종을 바꿔 영화를 제작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는 원작 훼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양성의 가치와 언어

구시대적 표현을 고치는 것이 '검열'이냐 '시대에 맞는 진화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로알드 달 작품은 반대 여론이 심해지자 출판사가 '개정 버전'과 '고전 버전' 두 가지를 출시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나자 콘텐츠 업체들이 차별적 표현을 수정하는 것을 두고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출판계는 아직 원작 수정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민음사가 세계문학 전집의 작품 해설에 나오는 차별적 표현을 고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단어와 차별적 표현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소외시킨다. 다양성의 가치가 중요한 오늘날, 더욱 많은 사람을 포용하려는 콘텐츠 업계의 고민과 시도는 그 자체로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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