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말과 마음을 모으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10기 강민주
일제강점기, 말과 마음을 모은 우리의 사전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항거하여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헌신한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다. 영화 속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은 친일파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사전 말모이 작업에 헌신하지만 일제의 탄압은 심해진다. 한편 1940년대 경성에 있는 극장매표원으로 일하던 판수(유해진)는 해고당한 후 일자리를 찾다 우연히 조선어학회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이처럼 <말모이>는 독립운동가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일제의 탄압에 맞서 말과 마음을 모아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10년 동안 돈을 모아야지, 말을 모아서 뭐해 얻다 쓰려고?”
“어따 쓰긴요. 사전 만들어야죠”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한다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말모이는 ‘우리의 말을 모은다’라는 뜻으로서 일제강점기에 편찬하고자 했던 사전의 이름이자, 말을 모으는 운동이었다. 1443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우리 후손들은 한글의 연구와 재정립을 소홀히 했다. 수백 년 후, 1910년 국권 피탈로우리나라의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국어학자 주시경은 민족의 얼을 살리기 위해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어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한글은 통일된 표기나 띄어쓰기가 없어서 백성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이에 1911년 주시경과 그의 제자인 김두봉(1889-미상)과 이규영(1890-1920) 등은 우리말을 모아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914년 국어학자 주시경이 사망했고, 이에 따라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일본이 지금 우리를 침략했으니 앞으론 우리의 근본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요. 그 문화를 지탱하는 것이 언어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제일 먼저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조선어학회, 말모이 운동의 후신이 되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흩어져 있던 말모이 원고를 모아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자는 열기가 다시금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29년 10월 조선어학회의 108명의 위원이 모여서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조직했다. 1933년 사전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이들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1936년에는 조선어 표준어 사정안을 발표하여 3년 동안 무려 125차례의 논의를 거쳐 표준어 6,111개를 제시하며 사전의 형태를 갖추었다.
당시 사전 편찬 작업이 한창이던 1930-40년대에 일제는 내선일체, 일선동조, 황국신민 등을 주장하며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했다. 결국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민족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였고, 전국의 회원들을 긴급 체포하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발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조선 총독부에 의해 압수당했던 사전의 원고가 우연히 발견되며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염원하던 사전 편찬 작업을 이어갔다. 1945년 해방 직후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간행했으며, 1947년 ‘조선말 큰사전’ 1권을 시작으로 1957년까지 총 6권을 간행함으로써 주시경이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한 지 46년 만에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을 마무리했다.
비운의 원고 말모이, 국보가 되다
한편 광복 이후 말모이 원고의 행방은 묘연했다. 국어학자들 사이에 ‘현대식 사전 말모이가 있다’ 정도로만 알려지던 말모이 원고는 1976년 주시경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상에 드러났다. 말모이는 원래 여러 책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ㄱ’부터 ‘걀죽’까지의 표제어가 수록된 1권만이 전해진다. 말모이 원고는 240자 원고지에 한글의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붓글씨로 쓰여 있다.
2020년 12월, 말모이 원고는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말모이 원고는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 국어사전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라는 점,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말모이: 말과 마음을 모아 민족성을 지켜내다
영화 <말모이>에서 민족의식이 없던 주인공 판수(유해진)는 우연한 계기로 조선어학회를 돕게 되면서 역사와 언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말모이’는 일제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우리말을 지켜내고자 일제강점기에 편찬하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사전이다. 비록 사전이 완성되지 못하고 비운의 원고로 남게 되었지만, 말모이 원고는 광복 이후 편찬된 여러 우리말 사전들의 전신이기도 한 우리나라 국보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듯 우수한 한글을 지켜내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노력에 주목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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