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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회원 글모음

학문 위에 있는 영어

by 한글문화연대 2013. 8. 8.

* 이 글은 2013년 8월 1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글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7312109075&code=990100#livereContainer)

 

 

8년 전, 뒤늦게 교수 자리를 얻은 어느 선배가 자신은 영어 강의 능력이 있음에도 운때가 안 맞아 좋은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자기 대학의 학생들 영어 실력이 낮아 나중에 대우받지 못할까 염려해 학과 수업과는 별도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말도 남겼다. 전공이 사회과학임에도. 그 선배는 얼마 전에 서울의 명문대로 자리를 옮겼다. 영어 강의 능력을 인정받은 모양이다.

영어를 익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좋기로야 영어 쓰는 나라에 살면서 그곳 사람들과 부대끼는 길이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그 길을 택하기 어려울 때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대체수단도 이제는 꽤 많다. 그래도 예로부터 영어에는 왕도가 없다고들 했듯이 어떤 수단을 택하느냐보다는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가 성취를 좌우한다.

 
따라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도 지루하지 않거나 그 투자가 어차피 쏟아야 할 노력과 겹치는 것이라면 투자 대비 효율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영어 교육자들은 늘 이런 방법을 고안하려 애쓴다. 먼저, 지루함이 없으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일본어를 익혔다거나 미국 드라마 때문에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 투자가 너무 많고 개인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 규격화와 사업화가 어렵다. 그래서 후자의 방법, 즉 어차피 쏟아야 할 노력을 영어로 수행하게 하는 투자 방법이 고안된다. 미국 교과서를 교재로 삼아 수학이나 과학, 사회를 영어로 가르치는 학원이 바로 그런 모델이다.

이른바 ‘내용 기반 교육(CBT·Contents Based Teaching)’이라는 영어 교육 방법은 생활에서 영어 환경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효과가 좋다는, 부분적인 영어 몰입 교육 방법이다. 학생들이 어차피 해야 할 공부를 우리말로 할 게 아니라 영어로 하는 거다. 특히 시험이라는 강제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학교 공간에서 매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이를 초·중등 교육에 도입하려 했으나 ‘안타깝게’ 좌절됐다. 하지만 국민이 잘 모르는 사이에 국내 대학에서는 이 교육 방법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대학 순위 평가에 영어 강의 시행 여부가 영향을 미치자 신임 교수 채용에도 영어 강의 능력이 당락을 결정하는 잣대가 됐다.


어차피 해야 할 수업을 영어로 한다면 대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높아질 테니, 왕도는 아닐지라도 괜찮은 영어 교육 방법이다. 아니, 그렇게들 가정한다. 그러므로 우리 대학생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싼 대학에 다닌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넓은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전문 지식과 지성을 습득하기보다는 그것을 매개로 영어를 가르치는 대형 학원이 오늘날 한국의 대학인 셈이다.

 

모국어로 학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이를 저주의 불도장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동남아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영어 교재와 영어 강의가 횡행하는 이면의 서글픔, 자기 말로 학문을 할 수 없는 불리함을 동경한다.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남표 전 총장의 강제 영어 강의 방침은 여론의 따가운 지탄을 받았다. 그렇지만 새로 강성모 총장이 온 지금도 강제 영어 강의 방침을 바꾸지 않을 모양이다. 빠르고 섬세하고 깊이 있는 모국어 의사소통 대신 아무래도 그보다 처지는 영어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학문 발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그래서야 거지도 영어 잘한다는 영미권의 학문에 견줄 우리 학문을 언제 세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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