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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이거는 어디에 바르는 건가요?’ 외국어 가득한 한국 화장품 - 박수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9. 26.

‘이거는 어디에 바르는 건가요?’ 외국어 가득한 한국 화장품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박수진

nur351@naver.com

 

 

최근 화장품 전문점 올리브영이 일 년에 4번 있는 ‘올영세일’을 했다. 필요한 화장품을 사려 올리브영 어플리케이션에 들어가 여러 상품을 살펴보았다. 직접 실물을 볼 수 없으니 이름만 보고는 어떤 화장품인지, 어떤 기능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센시비오’, ‘헤어 스칼프 앤 브로우 앰플’, ‘프로타주 펜슬’ 등 거의 모든 제품이 어려운 외국어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제품명만이 아니라, 색상명 역시 한 번에 어떤 색인지 구분하기 힘든 외국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출처: 올리브영 누리집)

 

얼마 전에는 마트에 가서 샴푸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할아버지가 한참 두리번거리며 여러 제품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걸 보았다. 한참 뒤 할아버지는 통 하나를 들고 오며 ‘학생, 이거는 어디에 바르는 거요?’라고 물었다. 그 통에는 ‘original collection body wash(오리지널 컬렉션 보디워시)’라고 쓰여 있었다. 나 역시도 단번에 보디워시 제품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간판이나 옷 상표도 외래어가 많지만 화장품은 더더욱 한국어로만 된 제품을 찾기 힘들다. 이름만이 아니라 제품 전면이 로마자로 가득 차 있다. 화장품이 전문적인 분야인 것을 감안해도 너무 과도하게 이름과 포장에 외래어 표기가 넘친다. 이 때문에 위 할아버지 예처럼 제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발생한다. 2015년 국민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로마자 중심의 외국어 표기가 많은 분야로 72.8%가 화장품명을 꼽았다. 멀티 펩타이드, 폴리머, 애시드 등 화장품 이름에는 특히 더 뜻을 알 수 없는 영어 단어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외국어가 가득한 화장품을 구매하는 사람들 중에는 화장품 이름을 잘 아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트에서 기초 화장품을 구매하는 사람 중에는 노인도 많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소비자들은 배려 없는 일방적 언어 사용으로 제품에 관한 알권리를 침해받는다. 식품 등의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 제1조에는 “식품 등에 대하여 올바른 표시, 광고를 하도록 하여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건전한 거래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소비자 보호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법률은 올바른 표시가 알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화장품과 관련된 법령에서는 이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올바른 표시를 제대로 강제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현행 법령에서는 화장품의 명칭, 영업자의 상호, 제조번호, 사용 기한 등을 1차 포장에 표시하도록 하였다. 화장품법 제12조에서는 제10조 및 제11조에 따른 기재, 표시는 다른 문자 또는 문장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하여야 하며,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정확히 기재, 표시하되 한자 또는 외국어를 함께 기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판매업무 정지 1~12개월까지의 행정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제대로 처벌받는 기업은 거의 없다. 한글로 정확히 기재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글자의 구체적인 위치나 크기에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전면이 아닌 후면 혹은 스티커에 작게 기재사항을 반영해도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조금 더 구체적인 법령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가 사업자와의 거래에서 표시나 포장 등으로 물품 등을 잘못 선택하거나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물품 표시 기준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 현행 법령에는 언어 표기 관련 사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품에 무분별한 외국어 표기 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에서도 외국어 표기만이 아닌 한국어 표기도 함께 병기하여 제품을 출시하거나, 이름 자체를 한국어로 짓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에센스, 틴트’라는 표현이 있긴 하지만, 아래 사진처럼 괄호 안에 ‘뿌리는 에센스’라고 설명을 적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탕후루 탱글 틴트’처럼 제품명에 한국어로 제품의 질감을 표현한 사례도 있다.

 

출처: 올리브영 누리집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 보존만이 아닌 사회를 화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든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고 원하는 물건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쉬운 말로 하나씩 바꿔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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