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쓰는 번역 투, 어떻게 바꿀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안지연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문제가 없는 문장일까? 이 문장에는 문법적 오류도 없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명확하여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이 문장은 우리말다운 문장일까? 이 문장에는 ‘번역 투’가 몇 번 쓰였을까? 번역 투란 다른 언어로 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외국어 문장을 직역하여 어색하게 느껴지는 문체를 말한다. 글을 읽다 보면 영어나 일본어 번역 투가 흔하게 보인다. 영어는 세계 공용어로 입시나 취업 등 우리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에 따라 영어 번역 투 또한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가 많은 영향을 미쳤고, 해방 이후에도 일본어 도서가 유통되면서 지금의 언어생활에도 일본어 번역 투라는 찌꺼기를 남겼다. 현재 번역 투는 공적인 상황에서, 혹은 무게감 있는 글을 쓰는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마치 번역 투가 글의 내용에 공신력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번역 투를 고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번역 투보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쓸 때 의미를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번역 투를 알아보고 올바른 표현으로 바꿔보자.
‘그녀’
‘그’와 ‘그녀’는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거의 쓰이지 않던 표현이다. 남성과 여성을 대명사로 지칭하기보다는 신분이나 상황에 따라서 부르는 명칭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성별 구분 없이 '彼(카레, 그)'라는 삼인칭 대명사를 썼지만, 일본이 서양과 교류하게 되면서 기존의 '彼'는 남성을 가리키는 대명사 'He'에 대응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여성을 가리키는 대명사 'She'에 대응하는 단어로 '彼女(카노죠, 그녀)'가 새로 만들어졌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서양 도서의 번역본이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서양식 인칭 대명사가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신분제 사회가 사라지고 난 뒤에는 '그’, ‘그녀’라는 대명사가 우리말에 완전히 정착했다. 사실 삼인칭 대명사 ‘그’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로,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거나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그’는 성별에 상관없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데 쓰여도 된다는 뜻이다. 특별히 성별을 강조할 상황이 아니라면 ‘그’라고 써도 아무 지장이 없다.
‘~에 관해’, ‘~에 대해’
‘오늘은 우리말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발표문, 질의응답 같은 상황에서 글과 말을 가리지 않고 자주 나타나는 표현으로 ‘~에 관해’, ‘~에 대해’가 있다. 이 두 표현은 영어 전치사 ‘about’의 번역 투이다. ‘~에 대해’ 혹은 ‘~에 관해’라는 표현을 쓰면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의미를 뚜렷하게 전달하려면 저 표현을 쓰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알맞은 표현으로 바꿔 쓰는 편이 낫다. 처음 두 문장을 매끄럽게 바꾸자면 각각 ‘오늘은 우리말을 주제로 발표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잘 모릅니다.’라고 바꿀 수 있다. 이렇게 번역 투를 다양한 표현으로 대체하면 의미를 더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다.
‘~에 있어(서)’
‘나에게 있어서 우리말은 소중하다.’, ‘나는 우리말에 있어 자부심이 있다.’
‘~에 있어(서)’는 일본어 표현 ‘~において'의 번역 투이다. 이 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지만, 대다수 문장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으며 때로는 문장을 더 부자연스럽게 한다. 위 두 문장에서 ‘~에 있어’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에 있어’가 쓰인 문장 대부분은 ‘나에게 우리말은 소중하다.’, ‘나는 우리말에 자부심이 있다.’ 같이 ‘~에 있어’를 지우면 더 간결한 문장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파괴가 심각하다.’
이 문장에 나오는 ‘~에도 불구하고’는 ‘even if’, ‘even though’ 등의 영어 표현에서 나온 번역 투이다. 문장에서 ‘불구하고’를 없애도 의미 전달에 큰 차이가 없다.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단어는 쓰지 않는 편이 낫다. 따라서 해당 표현은 ‘불구하고’를 뺀 ‘~에도’나 ‘~인데도’로 바꿔 쓸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앞선 문장을 다시 고쳐보자. ‘이러한 노력에도 우리말의 파괴가 심각하다.’라고 써도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종종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쓰인다. 이 또한 영어 표현 ‘can't be too emphasized’의 번역 투이다. ‘우리말 수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므로 다른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를 ‘중요하다’로 바꾸면 더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말 수호는 중요하다.’ 문장도 훨씬 더 간결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바로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번역 투를 찾아보고 올바른 표현을 알아보았다. 여러 이유로 우리 언어생활에 영어 번역 투와 일본어 번역 투가 뿌리 내렸다. 번역 투는 간단한 문장을 복잡하게 하여 정확한 의미 전달을 어렵게 한다. 다시 첫 문장을 읽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문장은 ‘그렇지만 우리말을 지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라고 바꿔쓸 수 있다. 이 밖에도 아직 바꿔 써야 할 번역 투가 많다. 습관처럼 쓰는 표현 가운데 어떤 표현이 번역 투인지 스스로 찾아보고 바꿔 쓸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매체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해외 출간물을 번역하는 출판사나 번역가도 지금까지 써온 상투적인 표현을 줄이고 새롭고 간결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개인과 대중 매체의 노력이 동반될 때 번역 투가 우리말다운 표현으로 바뀔 수 있다. 지금 당장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자. 얼마나 많은 번역 투가 쓰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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