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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한자 교육은 문해력 증진에 도움이 될까? - 이명은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9. 19.

한자교육은 문해력 증진에 도움이 될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이명은

01auddms@naver.com

 

(출처: 인사이트 "과제 제출 '금일'까지라면서요!"...금요일에 과제 제출했다 'F' 맞게 생긴 여대생의 호소)

 

2021년 5월 6일, 한 누리집 게시판에 ‘과제 제출 금요일까지 아니에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한 대학교수와 학생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교수가 “어제 자정 이후로 과제물을 제출하는 학생은 하루에 과제 점수가 20점씩 감점되니 서둘러 제출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과제 제출 금요일까지 아니에요? 금일 자정까지라고 하셨었는데”라고 묻는다. 교수가 말한 ‘금일’은 오늘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수많은 누리집 게시판에 퍼져나가며 당시 화제가 되었다. 또한 비교적 간단한 단어인 ‘금일’을 알지 못하는 학생의 모습은 현세대의 문해력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논란이 ‘금일’, ‘심심한 사과’ 등의 한자어 중심으로 퍼져나가자, 이는 젊은 세대가 한자 교육을 받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문해력 증진을 위해 한자 교육을 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하였다. 한자 교육이 문장과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다. 2014년 9월,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안 발표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침을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해당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한자 교육이 낱말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했다. 한자의 뜻을 알면 한자어를 해석하기 더 쉬워질 것이라는 이유였다. ‘금일’이 지금을 뜻하는 ‘今(금)’과 날을 뜻하는 ‘日(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해당 단어가 오늘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한글문화연대를 포함한 국어단체들은 이 정책에 크게 반발했다. 국어단체들은 한자 교육이 말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선생’이라는 단어는 한자로 ‘先生’이라고 쓰는데, 이는 해석하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자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선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기 어렵다. 한자의 의미를 알면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란 추측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한자병기는 단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글 읽기를 방해하고 의사소통에 혼란을 주기만 한다. 또한 한자 교육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늘리기만 할 것이라는 점도 국어단체들이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출처: 한글문화연대 누리집)

 

한글문화연대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반대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2015년 4월 30일, 한글문화연대는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과 함께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의 연구 책임 부서를 밝히기 위해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감사를 청구했다. 2015년 7월 1일엔 한글문화연대를 포함한 여러 국어단체가 참여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으며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서명운동이 꾸준히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한글문화연대는 토론회 참여, 칼럼 투고 등으로 한자병기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였다.

노력 끝에 2018년 1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이 폐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자 교육이 문해력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문해력을 기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자 교육이 문해력을 길러준다고 볼 수는 없다. 한자의 뜻을 아는 것이 반드시 단어나 문장의 뜻을 아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글자 하나의 뜻에 집착하다가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읽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이전 세대보다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신조어 사용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짧고 쉬운 단어와 문장을 주로 사용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구세대에 비해 눈에 띄게 문해력이 낮아진 것이 아님에도 누리소통망과 누리집 게시판의 발달로 문해력이 낮은 청년의 사례가 쉽게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젊은 세대는 구세대보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라는 편견이 생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무턱대고 한자 교육 부족을 탓하기보다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이 폐기된 이유를 되짚어보며 우리말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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