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9기 김동찬 기자
최근 국립국어원에서 한글날을 앞두고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을 서로 바꾸어 쓰는 신조어, 일명 ‘야민정음’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댓글 행사를 기획했으나, 누리꾼들의 반발로 행사를 취소한 일이 있었다. 올바른 한글 사용 문화를 선도해야 하는 국립국어원에서 표준어가 아닌 인터넷 게시판발 유행어를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반대 측의 주된 의견이었다.
‘야민정음’은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라는 극우 게시판에서 사용하기 시작해 퍼진 것으로, 그 이름 또한 게시판 제목에서 글자를 따와 훈민정음과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각종 혐오 발언을 일삼아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는 집단에서 탄생한 속어를 대중 일반에서 탄생한 문화의 정식 명칭인 듯 공식 기관에서 그대로 소개하는 것은 자칫 그들의 다른 부정적인 언어에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어휘 및 표현이 빠르게 생겨나고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말의 유래를 일일이 조사하고 걸러내어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에서 ‘야민정음’의 예시로 제시한 ‘댕댕이, 커여워’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인터넷 사용자 중 대부분은 그 탄생지가 남초 극우 게시판이라는 것, 심지어 자신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야민정음’으로 불린다는 것 또한 알지 못한다.
일례로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제공하는 검색어 분석 서비스를 통해 지난 1년간 기존 단어인 ‘멍멍이’와 그것을 변형한 ‘댕댕이’의 검색량을 비교한 결과, 누리집 사용 기기와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전 기간 ‘댕댕이’의 사용량이 ‘멍멍이’의 사용량을 크게 앞서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띵곡’의 경우에도 원래 단어 ‘명곡’과 사용량 측면에서 차이가 도드라지지 않았으며, 일부 시점에서는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댕댕이’와 ‘띵곡’은 이미 그 유래와는 상관없이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며 대중화되었고, 결국 원래 사용되던 단어를 대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실 ‘댕댕이’ 자체는 글자의 모양을 변형한 것일 뿐, 어떠한 차별이나 혐오의 의미가 들어 있지는 않다. 이렇다 보니 ‘멍멍이’에서 ‘댕댕이’, ‘명곡’에서 ‘띵곡’이라는 새로운 단어 활용의 방식이 가져오는 신선함과 어감의 변화 등이 사용자들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해당 단어의 유래를 잘 모르고 유행어처럼 사용하거나 알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들 사이에서 언어가 높은 대중성을 획득한 이상, 그에 대한 부가적인 정보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야민정음’ 중 대중화된 단어는 심지어 각종 예능 방송의 자막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민정음’이 탄생한 배경이 반사회적인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비판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야민정음’과 같은 비표준어의 사용이 한국어 사용자 간의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의미와 관계없이 글자의 모양을 보이는 대로 바꾸는, 인터넷상에서 발전한 단어 활용 방식은 인터넷 유행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앞에서 예시로 들었던, 대중화된 ‘야민정음’ 또한 단어 자체의 사용량이 늘어나고 널리 알려진 것일 뿐, 해당 단어가 만들어진 방식까지 모두가 알고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혹자는 글자를 보이는 대로 변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낱말을 왼쪽, 오른쪽, 혹은 거꾸로 뒤집어 적거나 여러 글자를 하나의 글자 안에 합쳐 놓기도 한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을 모르는 사람이 과도하게 뒤틀린 단어를 마주한다면, ‘야민정음’에 의해 그들이 겪는 독해의 어려움은 종전의 몇 배로 늘어나게 된다. 또한 ‘야민정음’이 인터넷상의 문자 언어가 아닌 실제 말로 구현되는 경우, 시각적으로 변형된 글자들을 소리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글로 전달할 때보다 더욱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결국 ‘야민정음’은 언어가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기능을 상실한, 한글 파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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