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9기 권나현 기자
매년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480주년이 되던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훈민정음 반포 날짜를 근거로 하여 음력 9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당시의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이듬해인 1927년 가갸날은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을 토대로, 한글날은 마침내 10월 9일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온 한글날은 올해 576돌을 맞았다.
한글날은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글날의 지위는 국경일이 아닌 기념일이었다. 1990년,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됨에 따라 한글날이 국군의 날과 함께 법정 공휴일에서마저 제외되었다. 공휴일이 너무 많아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자 한글날을 국경일로라도 승격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경일’은 국가 수립이나 민족의 발전 등,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다. 국가 차원에서 지정한 경축일이라는 점에서 ‘기념일’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1949년 법률 제정 당시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까지였다. 당시엔 한글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부족해 한글날은 국경일에 포함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한글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문화라는 인식이 생기자, 한글날 또한 국경일로서의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2005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한글날은 드디어 국경일이 되었다.
2006년 한글날 행사는 기념식이 아닌 경축식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공휴일이 아니다 보니 국민들이 한글날 경축식을 함께 축하하고 즐길 수 없었다. 이후 여러 한글 단체들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가 모여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광화문 등에서 거리 서명운동을 벌였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통해 많은 시민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안전부에 국민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는 2012년 10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상대로 ‘도끼 상소’ 시위를 벌였다. 조선시대 유생 복장을 한 이 대표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드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면 도끼로 목을 쳐도 좋다”라고 외치며, 경총의 한글날 공휴일 반대 의견에 강력히 맞섰다.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하는 취지와 근거는 이러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면서, 그동안 우리 고유의 문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다 쓰던 백성들이 비로소 불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문화, 경제, 정치 등 여러 분야의 발전을 이루고 경제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러 국제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한글의 몫이 크다. 그렇기에 생산성 하락이라는 이유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건 한글의 가치를 무시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사실 공휴일의 개수와 경제적 어려움은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당시 대한민국의 연중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해 얻는 이득보다 하루 동안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금 되짚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가 더욱 크다는 것이다.
한글은 단순히 ‘기념’할 만한 역사적 유산이 아니다. 한글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우리의 삶에 아주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문자를 창제한 사람과 창제 원리가 명확히 전해져 내려오는 언어는 전 세계에서 한글밖에 없다. 문자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그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기념일을 제정한 나라 또한 우리나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날을 통해 한글의 가치와 중요성을 되새기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의 노력 끝에 2012년 국회상임위원회에서 ‘한글날 공휴일 지정 촉구 결의안’이 채택되며 한글날은 23년 만에 다시 공휴일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사람들은 휴일이 아니면 기념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던 만큼, 한글날을 단순히 쉬는 날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한글날엔 한글의 창제와 우수성을 기리고 그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평소 언어습관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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