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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엎질러진 외국어, 우리말로 주워담을 수 있을까 - 고대신문

by 한글문화연대 2024. 10. 11.

한글날마다 각 지자체와 교육청은 외국어 사용을 줄이자며 ‘순화어’를 제시한다. ‘노쇼’는 ‘유령예약’, ‘드라이브스루’는 ‘차내주문’ 등이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진 순화어 중 실제로 기존 외국어를 밀어내고 대중의 언어생활에 정착한 단어는 얼마 없다. 국가 차원에서 꾸준히 외국어를 고유어로 변환하는 ‘우리말 다듬기’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실제 언어생활에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어 정화에서 영어 번역으로

  국가적인 언어 순화 운동은 광복 이후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최초의 조직은 1948년 미군정청이 설치한 ‘국어정화위원회’였다. 일제 강점기에 정착한 일본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튀김, 꼬치, 전골 등의 새로운 어휘가 만들어졌다. 이후 박정희 정부에서도 ‘국어순화운동협의회’를 통해 우리말에 남은 일본어를 몰아내고자 했다. 김일환(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우리가 언어 순화에 비교적 거부감이 적었던 것은 일제 강점기 한국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잃게 되면서 한국어의 위기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어의 잔재를 일소하려는 차원의 언어 순화 운동이 민족 운동과 같은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순화 운동은 일본어보다 영어 등 외국어 표현을 우리말로 바꾸는 것에 초점을 뒀다. 이 시기엔 순화를 이끄는 주체가 대학까지 확장됐다. ‘서클’은 ‘동아리’,  ‘애프터’는 ‘뒤풀이’ 등 대학가에서 태어난 어휘들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세계화의 흐름에 비해 언어 순화의 영향력은 미약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199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가 이른바 ‘세계화 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문호를 개방했고, 해외여행의 자유화와 인터넷 발달로 순식간에 외국어가 들어오게 됐다”며 “어마어마한 해일에 비해 국립국어원이나 국어 단체들의 대응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롱받는 순화어, 세련된 외국어

  한국은 1991년 국립국어원을 설립하고, 2005년 국어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우리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폈다. 국어기본법은 한국어를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으로 규정하며 국어를 보전하고자 제정됐다. 하지만 한국어는 외국어에 비해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며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이건범 대표는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다 보니 언어 사대주의적 측면에서 영어를 숭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엔 영어를 사용한 단체명도 크게 늘었다. 본교 또한 지난해 ‘스마트모빌리티학부’를 설립했고, 내년엔 ‘글로벌엔터테인먼트학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강창우(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외국어 표현을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것은 유식하고 교양 있어 보인다는 점과 함께 ‘낯설기 효과’ 덕분에 우리말 표현이 함축하는 의미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어떤 대상의 이름으로 ‘파르베(Farbe)’라는 독일어 어휘를 사용하면, 그 대상의 이름을 이 어휘의 의미인 ‘색’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고, 우리말 표현을 쓸 때 동반되는 함축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언어 순화 운동 또한 힘을 잃었다. 특히 ‘웹툰-누리터 쪽그림’, ‘돈가스-돼지고기 너비 튀김’ 등 순화어가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비웃음을 받는 사례도 늘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언어 순화가 실패하는 이유는 언어의 대중성, 새말의 경제성 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순화어가 외국어에 비해 과도하게 길어 말하기 편한 ‘웹툰’과 ‘돈가스’를 대체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언어를 순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일환 교수는 “국가기관 등에서 인위적으로 순화어를 만드는 것은 대부분 생명력을 얻기 어렵고, 특히 이미 어느 정도 사회에서 정착해서 쓰이는 단어들을 대체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언중의 호응을 얻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순화에는 어느 정도 강제적, 폭력적인 관점이 내재하며, 이질성을 용인하지 않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인종 청소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노년층·저학력층 소외 경계해야”

  언어 순화 운동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민족주의가 아닌 ‘인권’을 목적으로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슬옹 원장은 “한자,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는 순화 과정에서 일부 폐쇄적 민족주의 경향이 없지 않았다”면서도 “언어 약자를 위해 쉬운 말, 언어공동체를 위한 바른말을 쓰자는 것은 전 세계 보편적인 언어 운동”이라고 말했다. 이건범 대표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모든 국민이 민주주의 정책을 이해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나이 든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 것은 그들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보건이나 금융 등 생활과 직결된 분야의 ‘공공언어’에서 언어 순화가 필요하다는 언급이다. 이 대표는 “코로나 시기 ‘코호트 격리’ 등 어려운 외국어들이 등장하며 국민의 불안을 가중하자 한글 단체들의 민원과 요구로 정부의 어휘 사용을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국립국어원의 2020년 ‘국민의 언어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22.9%는 공공기관에서 작성하는 각종 서류, 안내문, 홍보문 등에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 어렵다고 봤고, 그 원인으로 낯선 한자어 등 어려운 단어 사용(48.2%)을 꼽았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지난 9월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공공 용어 중 한자어나 외국어를 제보받는 ‘언어 개선 국민제보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학문 분야에서 우리말 사용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구연상(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디지털 휴먼’, ‘3D 모델링 기술’ 등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낱말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어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이는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어 논문을 읽을 수도 없는 ‘논문 까막눈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학문어는 곧 새로운 생각과 세계를 가장 구체적으로 마름질해 주는 설계도이자 청사진과 같은 것”이라며 “기술과 예술, 문화 등의 영역에서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우리말로써 마름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순화어가 대중의 언어생활에 정착하기 위해선 결국 순화어가 대중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대표적인 성공 요인은 ‘길이’다. ‘인터체인지-나들목’, ‘리플-댓글’ 등 성공한 순화어는 대부분 그 길이가 원래 단어보다 짧거나 같았다. 원래 뜻을 왜곡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나들목의 경우 ‘나가다’와 ‘들어가다’, ‘길목’을 더해 인터체인지의 뜻을 살렸다. 김슬옹 원장은 “고치고자 하는 말과 같은 길이의 낱말이기에 사용할 때도 효율적이고, 뜻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고대신문(http://www.kunews.ac.kr)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43002

 

엎질러진 외국어, 우리말로 주워담을 수 있을까 - 고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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