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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말] 48. '세이브케이션(Savecation)' 말고 '알뜰 휴가' 떠나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8. 3.

발표된 새말을 보다 보면 ‘새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처음 접하는 신조어들이 더러 있다. 그리고 이 신조어의 뜻이 무엇일지 단박에 짐작하지 못할 때도 적지 않다. 다소 ‘생뚱맞아서’다. ‘세이브케이션(savecation)’도 그랬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세이브 더 칠드런’이란 단체의 목적처럼 무엇인가를 구한다는 뜻인가.

풀이말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을 즐기려는 경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절약한다는 의미의 ‘세이브(save)’와 휴가를 뜻하는 ‘베이케이션(vacation)’을 합친 말이다. 2023년 3월 《싱글리스트》라는 언론매체에서 처음 사용했고, 이후 호텔 예약 플랫폼 업계의 신상품 소개 기사에 거듭 등장한 것으로 보아 이 매체가 최초 유통한 말로 짐작된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에 유행한 럭셔리 호캉스 등 과감한 소비 트렌드는 최근 고물가 기조 속 알찬 구성으로 여행을 즐기려는 ‘세이브케이션’ 등이 주목받고 있다(《매일경제》 2023년 4월)”는 기사가 그 용례다. 정부 정책과 연관시켜 사용한 사례도 있다. “지난 29일 기획재정부는 ‘내수 붐업 패키지’를 공개”했다면서 이를 “‘세이브케이션’을 지원하는 정책”이라고 소개한 기사가 그것이다(《아시아에이》 2023년 4월). 

갓 태어난 신조어라 그런지 아직은 그 용례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여러 언론 매체가 속속 ‘신조어 사전’ 등의 형식으로 이 말을 소개하고 있어 사용이 제법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이 같은 조어는 방법상, 의미상으로 타당한 것일까. 우선 ‘~케이션(-cation)’의 사전상 의미를 살펴보면 ‘휴가라는 의미를 담은 접미사’임이 맞다. 영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로는 ‘프리케이션(pre-cation, 새 직업을 시작하기 유급 휴가)’, ‘맨케이션(mancation, 남자들끼리 모여 게임, 골프 등을 즐기며 보내는 휴가)’, ‘워케이션(wokcation, 휴가 겸 출장) 등이 있다. 

하지만 ‘세이브케이션’은 영어사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영어권에서는 단어로 인정하지 않는 말인 것이다. 대신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뜻풀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검색 결과 상단에서 보이는 뜻이나 용례는 국내에서의 쓰임과 거리가 멀다. “부부가 관계 개선을 위해 서로에게 집중하고자 떠나는 여행/휴가”를 뜻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권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비용 여행(혹은 이를 위한 용품 구매)’을 표방한 상품 광고가 있다. 그러나 ‘세이브’를 ‘저축한다’는 의미보다 ‘(부부간의 관계를) 구조한다’라는 뜻에 초점을 맞춰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이나 레저 업계는 이외에도 ‘-cation’이란 접미사를 붙여 여러 상품을 개발해 소개하고 있다. ‘키즈케이션’, ‘카페케이션’, ‘아트케이션’ 등이 그런 사례이다. 그러다 보니 ‘세이브케이션’처럼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 엉뚱하게 쓰인 사례도 있다.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숙박은 하지 않고 낮에만 이용하는 호텔 상품’이란 뜻의 ‘데이케이션(daycation)’을 ‘주말은 제외하고 평일에만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내놓은 경우다. 과도하게 영어 이름을 붙이는 상품 전략이 빚은 실수였다. 

이렇듯 불필요한 영어 사용은 물론 영어권의 쓰임새와 일치하지 않는 신조어인 ‘세이브케이션’은 더 널리 퍼지기 전에  우리말 대체어를 만들어 신속히 보급하는 게 시급하겠다.

새말 모임에서 제안한 우리말 후보에 1순위가 ‘알뜰 휴가’였다.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라는 의미도 있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뜻을 가지기 때문이다. 실제 ‘알뜰(한) 휴가’, ‘알뜰 여행’ 등은 관련 업체나 언론에서도 많이 사용해 온 표현들이다.

더불어 ‘실속 휴가’, ‘가성비 휴가’, ‘절약 휴가’, ‘아낌 휴가’ 등 다양한 후보말이 올랐으나, 역시 입에 착 붙는 ‘알뜰 휴가’가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고, 최종 새말로 선정되었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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