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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알기 쉬운 우리 새말] 금융 분야의 새말들

by 한글문화연대 2023. 7. 25.

최근 들어 금융 분야의 외국어 용어가 속속 눈에 띄고 있다. 디지털/가상현실 분야야 워낙 새로이 떠오르는 기술 영역이기 때문에 외국어 신조어가 피치 못하게 생겨날 수 있다지만(‘디지털’ 자체도 우리말로 다듬어져 정착하는 데 실패한 용어다), 금융은 전혀 ‘새로운 분야’가 아니다. 유럽에서 그 연원이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사업일 뿐 아니라(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이 생긴 것은 1674년이다) 비록 중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이긴 하나, 100여 년 전 개화와 함께 ‘금융’과 관련된 주요 개념들이 우리말로 정착했다.

그런데 새삼 이들이 영어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유로는 금융 시장의 세계화, 서구에서 공부한 학자들의 영어 과용 그리고 언중이 이를 거르지 않고 받아들인 탓 등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새말 모임에서도 그 어느 분야보다 금융 용어를 많이 다듬고 있기에, 이번 꼭지에서는 그 몇 가지를 한꺼번에 훑어보기로 한다.

첫 번째가 ‘머니 무브(money move)’. “낮은 금리 등의 이유로 자산이 손실 위험이 없는 안전 자산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 채권 등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2005년 6월 엠비엔에서 처음 사용된 이 말은 “예금에서 투자로의 시중자금의 이동을 뜻하는 이른바 ‘머니무브’”라고 소개되고 있다. 설명 안에 ‘자금’의 ‘이동’이라는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이를 ‘자금 이동’이라고 간단히 표현하면 될 터. 그런데도 굳이 ‘이른바’라는 수식에 작은따옴표로 인용을 해가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새말 모임에서는 관습적으로 작은따옴표 안에 쓰여온 ‘머니 무브’를 완전히 털어버리고 ‘자금 이동’이라는 우리말만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다음 살펴볼 말은 ‘뱅크 런(bank run)’이다. “거래 은행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한국경제>가 2000년 2월에 처음 소개한 외국어다. 그간 더러 쓰이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 폭발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오픈 런(open run, 매장이 문을 열기를 기다려 바로 뛰어가 구매하는 행위)’이라는 말이 ‘뜨면서’부터인 듯하다. 언론 기사로만 50만 회 가까이 인용되었으니 상당한 사용 빈도다. 심지어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과거의 뱅크 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나면서 ‘디지털 런’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중앙일보> 2023년 5월)”고 한다.

영어로는 ‘은행으로 달려간다’는 뜻이지만 그 함의는 ‘서둘러 많은 돈을 인출한다’는 뜻이다. ‘은행’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아도 행위 자체로 뜻이 설명되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말 다듬기도 ‘은행’을 생략하고 ‘인출 폭주’, ‘인출 몰림’, ‘예금 탈출’ 등 구체적 행동을 묘사한 말을 중심으로 했고, 이 중 여론조사를 거쳐 ‘인출 폭주’를 새말로 확정했다.

그 외에 ‘런(run)’이라는 말꼬리가 붙은 금융 용어인 ‘본드 런(bond run)’ 역시 우리말로 다듬었다. “투자자들이 앞다퉈 채권을 파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런’이라는 공통의 꼬리말에 맞춰 ‘뱅크 런’의 새말인 ‘인출 폭주’와 압운을 통일한 ‘채권 매도 폭주’ 등을 후보로 올렸는데, 여론조사 결과 ‘채권 매도 사태’가 최종 새말로 결정되었다. 때로 이렇게 같은 영어 단어(run)도 우리말로는 다르게 다듬은 표현이 언중에게 선택되기도 한다.

마지막 살펴볼 말은 뱅크데믹(bankdemic ←bank pandemic)이다. “은행에 대한 공포가 감염병처럼 급속하게 번진다”는 뜻인데, 2023년 3월 <매일경제>에 처음 소개되었으니 가장 ‘따끈따끈한’ 신조어다. 이 기사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은행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우려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며 이를 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인 ‘뱅크데믹’으로 규정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부실 은행에 대한 우려, 금융권 전반의 불안정에 대한 공포 역시 새로운 현상이 아님에도 이런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은 코로나 대유행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이 처음 이 말을 만들어 보도한 이후 뱅크데믹이라는 표현은 영어권에서 사라졌다. 오직 우리 언론에서만 2,700번가량 인용되었다.

새말 모임에서 ‘뱅크데믹’을 대신하기 위해 제시한 새말 후보는 ‘은행 불신 확산’ ‘은행 불신증’ ‘은행 공황’ 등이다. 앞서 ‘뱅크 런’은 ‘은행’이라는 단어보다 ‘이용자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춰 다듬었지만, ‘뱅크데믹’은 불신 혹은 공포의 대상이 ‘은행’이라는 점이 핵심이기 때문에 ‘은행’이라는 단어를 살린 것이다. 이 중 언중이 선택한 말은 ‘은행 불신 확산’이었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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