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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욜드 대신 청노년

by 한글문화연대 2023. 7. 25.

이번에 새로 다듬은 외국어 신조어 ‘욜드’는 마치 갈라파고스섬의 생물 같다. 애초 바다 건너에서 들어왔으나 어느새 다른 육지나 섬에서는 모두 멸종하고, 오로지 갈라파고스에서만 살아남은 희귀 생물. ‘욜드’ 역시 해외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전해졌으나 현재 그 어느 나라에서도 용례를 찾을 수 없고 오로지 우리 언론에서만 종종 쓰이니 말이다.

‘욜드(YOLD)’란 ‘young old’를 줄인 말이다. 우리말샘 사전에 따르면 “노령기에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로 이루어진, 65세부터 75세 사이의 노인층을 이르는 말”이다. 즉 ‘젊은 노인’이라는 뜻이다.

우리 언론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2019년 11월 <아주경제>에서다. 당시 기사는 “일본 사람들은 곧잘 일본식 영어를 만들어 역수출하는 재주가 있다. 가라오케가 대표적인 사례”라며 “욜드 역시 이 같은 일본식 영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욜드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사회적 배경 역시 언론의 용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능동적 소비 주체로 급부상한 베이비붐 세대인 ‘욜드’는 투자나 여가 활동 등에서도 이전 세대와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미래지향적이고 트렌디하다.”(<서울신문> 2023년 3월) “젊게 살려는 노년층의 욕구가 ‘욜드’의 유행을 몰고 왔지만 청춘처럼 즐기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이데일리> 2022년 10월)

그러니까 욜드는 단순히 특정 연령대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은퇴 연령이 지나서도 젊은이 못잖게 강한 경제력과 적극성으로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이들의 등장을 주목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세계경제대전망’에서 앞으로 이들 세대가 항공·여행·금융·의료 등 다양한 부문의 산업에서 중요한 고객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또한 <포브스>도 2020년 1월에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Old Lang Syne)’을 살짝 비틀어 ‘욜드 랭 사인을 들어보자(Let's Hear It for Yold Lang Syne)’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들을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반짝 주목받은 뒤로 영어권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yold’를 검색해 보면 사전에 등장하기는 한다. 근데 그 뜻이 ‘잘 속는 사람, 멍청이’라는 속어다. 자칫 잘못 사용했다가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영어 사용자들이 단어 뜻을 자유롭게 유추해 올리는 공개 영어사전 ‘urban dictionary’에도 ‘욜드’라는 단어가 등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젊은 노인’이라는 뜻과 반대로 “젊은 사람이 나이 먹은 척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욜드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일본에서는 어떨까? 역시 구글에서 일본어 ‘욜드(ヨールド 혹은 ヨルド)’를 검색해 보아도 위 의미로 쓰인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갈라파고스섬의 생물처럼 우리나라에서만 끈질기게 유통되는 ‘욜드’를 대체할 새말로는 어떤 표현이 좋을까? 새말 모임 논의에서는 이들의 물리적 연령대를 가리키는 ‘노년(노인)’이라는 말과, 이들에게 새로이 부각된 ‘젊다’는 성격을 결합한 용어가 주로 후보군에 올랐다. ‘젊은 노년’ ‘젊노인’ ‘청노인’ ‘청노년’ ‘풋노인’ 등이다. 이채롭게는 “은퇴를 했지만 경제력을 갖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금퇴족’이라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 중 ‘젊은 노년’이란 표현이 가장 개념을 충실하게 설명한 용어이긴 하지만 말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세 글자가 적절하다고 판단해, ‘젊노인’ ‘젊노족’ ‘청노년’ 세 가지가 최종 후보로 압축되었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청노년’이 가장 높은 지지를 얻어 새말로 최종 선정되었다.

새말 모임에서 그간 다룬 외국어 신조어 중에는 기존 언론 등에 이를 대신할 만한 우리말 표현이 제시된 경우가 적지 않다. 혹은 신조어가 들어오기 전 이미 쓰이고 있던 우리말을 되살려낸 예도 있다. 하지만 ‘욜드’의 경우 그런 용례가 소개된 바 없다. ‘청노년’이라는 표현은 이번에 처음 탄생한, 그야말로 ‘새말’이다. 언론의 용례로는 경남도청에서 배포한 홍보 자료에 “청노년이 다같이 함께하는….”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청년과 노년층이 함께한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였다.

이렇게 기존에 쓰인 적이 별로 없는 ‘청노년’ 같은 ‘진짜배기 새말’은 용례가 있는 경우보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더더욱 사용자들의 애정이 필요하다. 아낌없이 써주자. 새로운 우리말이 어서 빨리 든든히 자리 잡고 쑥쑥 커나갈 수 있도록.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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