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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아파트 이름, 어쩌다 어려워졌나 - 이성민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7. 11.

아파트 이름, 어쩌다 어려워졌나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이성민

reasonmmm@naver.com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사진

 

시민의 70% 아파트 이름 어려워해

“저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 1차’에 살아요.”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이 아파트는 25자나 되는 긴 이름을 자랑한다. 해당 아파트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아파트’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이외에도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가람마을10단지동양엔파트월드메르디앙’이나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위치한 ‘인천소래논현구역C10블록에코메트로3차더타워’와 같이 한 번에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 붙은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오죽하면 “아파트 이름을 어려워한 어르신의 ‘니미xx 아파트’로 가달라는 말을 이해한 택시 기사가 목적지에 제대로 데려다줬다.”라는 이야기까지 있을까.

 

아래 세 개 도식은 서울시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시각화한 것이다. 서울시는 2022년 11월~12월 1,003명의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공동주택(아파트) 명칭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의 70%가 넘는 응답자가 아파트 명칭이 길고 어려워 부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응답했다.

 

아파트 이름의 구조

아파트 이름이 길고 복잡해진 이유를 알기 위해선 먼저 아파트 이름의 구조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파트 이름은 총 4개의 구조로 나뉜다.

 

1. 대부분 가장 앞에 붙는 단어는 해당 지역의 명칭이나 상징물이다.

2. 이후 건설사 명칭이 붙는데, 경우에 따라 두 개 이상의 건설사 이름이 붙기도 한다.

3. 이와 함께 각 아파트 ‘브랜드’ 명칭이 따라붙는다.

4. 마지막으로 일종의 애칭인 ‘펫네임’이 붙는 식으로 이름이 지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펫네임’ 즉 애칭의 존재다. 애칭을 붙이는 방식은 주변의 환경이나 상황 등이 관련된다. 예를 들어 ‘레이크’나 ‘리버’는 근처에 호수나 강이 있는 아파트를 말한다. ‘센트럴’이나 ‘스퀘어’는 근방에 4차선 도로나 공원이 있는 곳을 말한다. ‘플레이스’나 ‘하임’은 모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나 긴 이름을 가질 수 있도록 추가한 경우다. 이 외에도 아파트별 차별성을 위해 외국어를 남용한 수많은 의미의 아파트 애칭이 존재한다.

 

구별 짓기와 과시 소비가 만들어낸 아파트 이름의 유래와 현주소

2019년에 발표된 한 논문(아파트 과시소비 현상에 관한 연구(윤지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아파트 이름이 길어진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논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70년대까진 아파트는 서민의 주거 형태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점차 아파트 건설사에서 공격적인 광고를 내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를 이용한 구별 짓기와 과시 소비가 시작됐다. 아파트 건설사들은 자신들의 아파트가 특수한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아파트, 아무나 범접하지 못하는 아파트라는 인식을 심어 중산층과 서민을 구분 지었고, 이는 중산층이 자신들의 부를 시각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고급 아파트일수록 외국어로 브랜드명을 지었는데, 신분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단어를 쓰면서 구별 짓기와 과시 소비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점차 여러 건설사에서 고유 ‘브랜드’를 쏟아내기 시작하자 차별성이 사라졌다. 이에 건설사들은 2013년부터 브렌드에 애칭을 덧붙이기 시작하며 아파트 이름에 다시금 차별성을 두기 시작했다.

건설사의 경쟁이 고도화될수록 아파트의 이름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2023년 현재, 아파트 이름이 길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던 까닭이다.

 

시민들은 쉬운 아파트 이름을 원한다

다음은 앞서 서울시로부터 제공받은 다른 자료를 시각화한 것이다.

위 도식을 살펴보면 조사 대상의 절반 이상이 ‘한국어 사용 유도’, ‘글자 수 제한’ 등의 아파트 이름의 작명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동의했다. 서울시가 지난 4월 개최한 ‘공동주택 명칭 관련 2차 토론회’*에서는, “공동주택 명칭은 지명 공공성과 이름 제정 자율성의 상호보완 및 공존하는 가치임. 아울러 권고 수준의 가이드라인 제정이 요구됨”, “규제 가이드라인은 현실적이지 않음. 다만 다수가 관련된 만큼 지명의 혼란 방지와 아름다운 이름을 위한 방향성 및 자료제공 수준의 안내는 요구됨”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아파트의 작명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 다만 아파트 명칭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건설사와 자치단체, 기타 관련 기관 및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쉬운 아파트 이름을 짓기가 대세가 되길 기대한다.

*서울특별시, “공동주택 명칭관련 2차토론회 개최 결과보고” (문서번호:공동주택지원과-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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