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장애’, ‘병맛’… 악의 없이 쓰는 장애 차별 표현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이명은 기자
01auddms@naver.com
지난 4월 20일은 ‘제43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그런데 이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날’이라는 말에는 하루 정도는 장애인을 배려하자는 비장애인의 시혜적인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명칭을 바꾸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의 날’이나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지양하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를 차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말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
사실 수많은 사람이 악의 없이 장애 차별 표현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결정을 못 하는 사람 혹은 그런 상태를 뜻하는 ‘결정 장애’는 장애인이 아니라 결정을 못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장애 차별 표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 장애’, ‘선택 장애’, ‘분조장(분노 조절 장애의 줄임말)’처럼 무언가를 잘 못하는 사람을 장애인에 비유하는 표현은 장애를 부족하고 열등한 것으로 보는 시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장애 차별적인 표현이다.
‘결정 장애’를 비롯하여 ‘병맛’, ‘백치미’, ‘발작 버튼’ 등 많은 장애 차별 표현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표현에 장애 차별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또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고 그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출처: 네이버 검색창 갈무리
대표적인 장애 차별 표현 중엔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인 ‘병맛’이 있다. 검색창에 ‘병맛’을 써넣으면 연관 검색어로 ‘병맛 프사’, ‘병맛 사진’, ‘병맛 반티’ 등 ‘병맛’이 포함된 다양한 검색어가 나타난다. 그만큼 ‘병맛’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널리 쓰인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사용하는 ‘병맛’은 이제 단순히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이 아니라, 맥락이 없거나 형편없고 어이없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독자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병맛’을 대체할 다른 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따라서 장애 차별 표현을 줄이기 위해서는 각각의 표현이 차별적인 의미를 가진 이유와 그 표현을 대체할 말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표현에 장애 차별적인 부분이 없는지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또한 장애 차별 표현의 대체어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병맛’은 ‘무맥락’, ‘황당’ 등의 말로, ‘결정 장애’는 ‘우유부단’ 등의 말로 대체 가능할 것이다. 어감을 살리면서 대체 가능한 말들을 찾으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 차별 표현이 사람들에게 너무 익숙한 말이 되지 않도록 언론에서 차별적 표현을 지양할 필요도 있다. 여러 사람의 협력으로 장애 차별 표현이 줄어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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