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 한글로 불릴 수는 없을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이성민 기자
reasonmmm@naver.com
언론 보도에서 로마자 사용을 줄일 수는 없을까.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관련자가 일반인이면 언론은 통상 이들의 신원을 그대로 밝힐 수 없다. 이에 언론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들의 신원을 익명화한다. 여러가지 익명 보도 중 대표적인 것이 있다. 익명의 대상자를 ‘A 씨’, ‘B 씨’ 등으로 보도하는 방식이다. 굳이 로마자 표기로 익명화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내용도 언론마다 표기 방식 달라
사례를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최근 12년 동안의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했던 표예림 씨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분석했다.
세계일보(위) / 매일신문(아래)
위 사진은 같은 내용을 보도한 기사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두 기사를 비교해 보면, 동일한 인물에 대해 한 언론은 인물의 성을 따 ‘남 씨’라 익명화하였다. 반면 다른 언론은 ‘A 씨’라 익명화하였다. 그런데 여러 기사를 살펴보면 로마자 익명화가 훨씬 많이 눈에 띈다.
로마자 익명화 방식, 매주 2,000건 이상 보도
얼마나 많은 언론에서 로마자 익명화 방식을 사용하고 있을까? 다음 그래프는 2023년 1월 2일부터 2023년 4월 30일까지 총 17주의 기간 동안 보도된 기사* 중 사회 분야에서 ‘A 씨’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기사의 건수를 주간 그래프로 나타난 지표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그래프를 살펴보면 매주 2천여 건이 넘는 기사에서 인물의 익명화에 ‘A 씨’를 사용하고 있으며, 17주 동안 42,262건의 기사에서 익명이 필요한 사람들을 ‘A 씨’로 표기하였다. 이는 같은 기간 사회 분야에서 발행한 239,839건의 기사 중 약 17.6%에 해당한다.
현재 익명화 방식의 문제점
왜 언론은 ‘A 씨’, ‘B 씨’라고 로마자 형식의 익명 표기를 하는 것일까? 우선 언론의 익명 보도가 언제 시작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8년 이전까진 언론의 실명 보도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1988년 이혼 소송 주부의 ‘청부 폭력 오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실명 보도에 대한 경각심에서 익명 보도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후 사건 보도에 대한 언론의 익명화 규칙은 현재까지 확립되지 않았다. 같은 언론사 소속의 기자들마저 다른 익명화 방식을 쓰는 모습을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언론이 익명화에 로마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김 씨’, ‘이 씨’처럼 성씨를 쓰면 사건이 알려질 경우 해당 관계자를 추정할 수 있어 로마자를 사용하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보도기사에서 로마자로 된 익명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은 한글로 익명화하기도 한다. ‘김 모 씨’, ‘ㅊ 씨’ 등이 대표적이다. 간편하면서도 유용하게 대상자의 신원을 가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기사의 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하여 볼 때 누구를 지목하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면 언론이 명예훼손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다. 그러니 언론은 이름은 물론 당사자의 연령, 주소, 직업, 직장 등을 표시함으로써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에 원칙상 ‘김 씨’ 등의 익명화도 사용할 수 없다.
좋은 우리말 익명화를 위해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익명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간편한 방법은 ‘ㄱ 씨’, ‘ㄴ 씨’, ‘ㄷ 씨’로 익명화하는 방식이다. ‘A 씨’, ‘B 씨’처럼 순서를 나열하는 것 외의 기능을 하지 않으니 신원이 노출될 걱정이 없어 익명화 방식에 가장 이상적이라 여겨진다. 혹은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관련된 지시어로 나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노인’, ‘어느 관련 업계 종사자’ 등이 될 수 있다. 혹은 아예 가명으로 보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무분별한 로마자 사용으로 한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로마자 사용을 줄이고 한글 사용을 늘려, 한글을 더욱더 사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언론이 앞장서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언론의 익명화 방식에 로마자 대신 한글이 쓰이도록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수집하는 언론사(전국일간지(11), 경제일간지(8), 방송사(5), 지역일간지(28), 전문지(2) 총 54개 언론) 대상.
세부 내용은 (https://www.bigkinds.or.kr/v2/intro/news.do) 참조
** 대법원 1998.7.14. 선고. 96다17257
*** 정대기, “언론보도와 명예훼손에 관한 연구” (2004, 경상대 법과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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