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예멘 난민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벌어졌었다. 정치적, 사회적 위험 때문에 탈출한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수용해야 한다고 선뜻 말할 자신도 없다. 탈북 어민을 북으로 돌려보낸 일을 놓고 시끄러워진 다음에야 나는 일반적인 난민과 북에서 탈출한 난민, 즉 탈북민이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이 아주 극소수라고 들었는데, 탈북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북쪽으로 전단 날리는 일을 정부에서 막자 어떤 탈북민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난했던 것도 기억난다.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에 비해 탈북민은 수월하게 한국 ‘국민’이 되는 모양이다.
일반 난민과 탈북민을 왜 이렇게 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오늘의 주제는 이게 아니다. 말도 안 통하고 생김새도 다를 뿐만 아니라 우리와 어떠한 역사도 공유하지 않은 예멘 사람들, 말씨는 조금 다르지만 뜻이 통하고 같은 생김새에 일제 강점기 역사를 공유하는 북한 사람들을 어찌 동등한 잣대로 볼 수 있겠는가? 이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탈북 어민 사건을 접하면서 놀랐던 것은 북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어느 시사평론가의 해설이었다. 우리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정하고 있으므로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며, 그들이 탈북하는 순간 우리 정부는 자신의 국민을 돌볼 책임을 져야 한단다. 당혹스러웠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길 바라지만 현실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국가이고 서로 다른 국민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는 우리 국민의 상식적 통념일 터다. 같은 민족이기는 해도 북쪽 사람을 한국 국민이라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왜 그들을 만났다고 그토록 많은 이가 간첩죄를 뒤집어썼단 말인가? 탈북 어민을 원래 한국 국민이라고 보는 건 이런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는 해석 아닐까? 적어도 예멘 난민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한국 국민이라고 하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논리 같다.
나처럼 남북이 ‘두 개의 국가’라고 주장하면 통일에 반대한다고 보기 쉽지만 그건 분단 직후의 인식일 것이다. ‘두 개의 국가’는 현실에 대한 인정이지 통일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유엔에서 남북이 두 개의 국가로 인정받은 건 30년도 넘은 일이다. 반면 ‘하나의 국가’는 이상을 말하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갈등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두 나라 헌법에서 모두 통일을 과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물어보자. 누구 식으로 통일할 것인가? 둘 다 자기식대로 하고 싶을 테니,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통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갈등을 키울 수도 있다. 영토를 합쳐 하나의 의회, 하나의 행정부, 하나의 사법부를 세우고 동일한 형식과 내용으로 주민 자격을 부여하는 게 실질적인 의미의 ‘통일’이라면, 이런 통일은 서로 적대하는 남북 관계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통일로 가는 첫걸음은 평화의 정착이다. 진정 평화가 필요하다는 마음이라면 우리 헌법의 영토 규정부터 바꿔야 한다. 일본이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 우리 마음은 어떤가? 일본을 포용하고 감싸고 인류애를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가? 한반도 전체를 우리 영토라고 규정하면서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니. 상대 핑계를 대지 말고 우리가 먼저 한 발을 떼어야 한다. 두 개의 나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헌법을 고치자. 남의 눈치 안 보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내디딜 수 있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첫걸음이다. 30년 전 중국과 그랬던 것처럼 수교하고 대사관 설치하고 비자 발급해 자유롭게 교류하자. 그러면 탈북 어민 사태와 같은 황당한 전쟁은 안 일어날 테니.
이 글은 국민일보 <청사초롱>란에도 연재하였습니다.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57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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