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의’, ‘역주행 가즈아!’... 일본 한국어 교재에 녹아든 한국 문화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0기 김은수 기자
5uzuran@ewhain.net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일본의 젊은 세대 일상 전반에 한국 문화가 널리 퍼졌다. 이를 ‘4차 한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음식, 옷, 화장품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일본 최대 규모의 지역할당형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는 한국관광공사와 협력하여 올해 5월 9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한국 음식(구루메) 페어’를 진행했다. 양난영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 차장은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방문하는 고객 수가 하루 평균 2,000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행사 기간 중 누적 2억 8,000만 명에게 한국 음식과 한국 방문의 해를 알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행사 상품을 전한 트위터 글이 33만 번의 리트윗 수를 기록하여 한국 문화에 대한 뜨거운 현지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차 한류 열풍은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10·20·30대들은 ‘진짜(チンチャ)’, ‘사랑해요(サランヘヨ)’ 등 한국어를 사용해 소통하기도 한다. 특히 10대에서 20대 초반 일본 여성들이 즐겨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아예 ‘심쿵’, ‘멘붕’처럼 한글로 글을 써서 올리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쿨’하고 세련된 최신 유행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외국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듀오링고가 지난 4월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일본 10·20대의 약 46.7%가 “평소 생활에서 자신 또는 주위 사람이 한국어 문구나 단어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10대는 약 83.7%가 “학교 등에서 친구가 한국어 문구나 단어를 쓰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일상 속 한국어 유행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본 독협대학교 국제교양학부 김수정 교수는 일본 공영방송사인 엔에이치케이(NHK)의 최근 한국어 방송 교재가 “구성에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가미하며 트렌디하게 앞서 나가는 경향을 보인다”며 “기존의 한국어 학습 교재에서 볼 수 없었던 구어체와 학습 단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표현이 도입, 제시된 것이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듣기, 말하기를 고려하지 않고 문법 항목 및 문형만을 제시했던 기존의 한국어 교재에서 벗어나 한국 문화를 향유하는 한국어 학습자들을 위한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케이팝은 한국어 교재 구성에 새로운 영향을 주어 일본에서는 ‘덕질’ 용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덕질용 한국어 교재’가 출판되기도 했다.
‘꽃길만 걷자’, ‘많관부’... 일본의 ‘덕질용 한국어 교재’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덕질’이라고 한다. 케이팝 아이돌을 좋아하는 외국인 팬들이 ‘오빠’, ‘애교’, ‘막내’를 번역 없이 ‘Oppa’, ‘Aegyo’, ‘Maknae’처럼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외국어로 딱히 알맞은 단어가 없어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특한 현상을 보고 아이돌(Idol)과 훈민정음을 합쳐 만든 신조어 ‘돌민정음’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특히 ‘오빠’는 블랙핑크의 노래 ‘붐바야’에서 후렴구에 등장하며 대표적인 한류 유행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오사카 시내 서점에서 팔고 있는 ‘덕질용 한국어 교재’(왼쪽)와 교재 내용(오른쪽)/사진=직접 촬영
일본 출판사 ‘각켄(Gakken)’의 <세계가 넓어지는 덕질 한국어(世界が広がる推し活韓国語)>(2023)나 ‘와니 북스(Wani Books)’의 <추구하고 싶은 나의 한국어(推したい私の韓国語)>(2022)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국어 교재이다. 일본 덕질 문화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오시카츠(推し活, 덕질과 유사)’라는 단어를 제목에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세계가 넓어지는 덕질 한국어>에서는 ‘컴백’, ‘직캠’ 등 아이돌 덕질에 꼭 필요한 용어와 ‘찐 사랑이라 괴롭다’, ‘씹덕사... 좋은 인생이었다...’ 등 실제 아이돌 팬들이 쓰는 말투를 이용한 문장을 소개한다. 한국어 문장 위에는 일본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일본어 문자인 ‘가나’를 사용하여 표기하고, 아래에는 말의 의미를 자세하게 해설한다. 출판사의 내용 소개에 따르면, 한국어 화자와 함께 만들어 자동 번역이나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생생한 어휘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오사카 키노쿠니야 서점 내 한국어 교재 코너를 찾은 엔도 씨(20대·여성)는 “방탄소년단을 좋아해 저절로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고, 한국어를 배워서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싶다”며 자신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한국어를 잘하게 됐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길 바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한국어 교재 개발 방향성은 한국 문화에 달렸다
연세대학교 언어연구교육원 한국어학당 박종후 교수에 따르면, 일본 대학에서 비전공 한국어 과목의 수강 동기를 조사한 결과 ‘장래의 실용성’보다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문화적 호기심, 여행’ 등을 이유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습자가 많았고 그 경향은 최근 들어 더 강해졌다고 한다. 취업 활동 같은 경제적 관점에서의 이득을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한국에 문화적인 관심이 있어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덕질 용어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해 주는 ‘덕질용 한국어 교재’를 구매하는 사람들 또한 비슷하다. 그러나 여태까지 일본 서점 내 한국어 교재들이 회화보다는 문법 위주였으며, 예시 문장으로 문어체를 쓰는 등 문화적인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므로 한국어 교재를 개발할 때, 사회·문화적 자료를 이용하여 한국어 학습자의 문화적 관심과 호기심을 더욱 높이고, 동시에 언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덕질’과 같은 케이팝 분야에서의 어휘뿐만 아니라 여행, 음식, 화장품 등의 분야를 주제로 한 교재를 제작하여 한국어 교재 선택의 폭을 넓히면 더욱 많은 사람이 한국어 학습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만큼 학습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실용적인 교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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