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9기 김동찬 기자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이 가득한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1관 4층. 이곳의 한쪽 구석에는 ‘고서실’이라고 쓰인 작은 문이 있다. 중요한 자료들이 보관된 고서실에 일반 학부생이 출입하는 것은 원칙상 금지되어 있어 정확히 어떤 자료들이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없지만, 고서실 문 옆을 장식한 커다란 유리 간판은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기록 하나를 보여 준다. 바로 1459년 간행된 한글 고서이자 보물 745-1호인 『월인석보』 권1~2다.
『월인석보』는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으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각각의 제목을 따 『월인석보』라 일컫는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28년(1446) 소헌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은 아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불경을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한편 세종 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은 후 찬가를 지었고,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전체 25권으로 이루어진 『월인석보』 중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권에 해당하는 권1~2의 초간본이다. 1443년 한글 체계가 완성된 직후 간행된 『월인석보』는 조선 초기 한글의 사용 양상과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며, 지금도 국어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특히 권1 첫머리에는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 방법을 담은 「훈민정음 언해(본)」이 실려 있어, 한글 연구자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록물이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를 한문으로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예의(例義)와 서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예의(例義)는 글자 사용 방법을 해설한 글이며, 서문은 “나랏말싸미듕귁에달아…”로 잘 알려진, 세종이 문자 28개를 만들고 그것을 훈민정음이라 칭한 배경을 담은 글이다.
왜 「훈민정음 언해(본)」을 불교 서적인 『월인석보』에 함께 실었을까? 『월인석보』는 불교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한글의 가능성과 사용 방식을 이야기하기 위한 본보기였을 것이다. 1443년 한글 문자 체계가 완성되고 1446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되었음을 고려하면 『월인석보』는 새롭게 만든 문자를 시험하기 위한 하나의 기회이자 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종과 세조는 한문 서적을 성공적으로 번역해 냄으로써, 한문을 대신해 민족의 새로운 문자로 사용될 한글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또한, 아직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글의 사용 방식을 첫머리에 「훈민정음 언해(본)」으로 실은 후, 『월인석보』의 본문을 통해 구체적인 사용 예시까지 보여주었다. 아마 더 많은 사람이 한글의 사용 원리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취지였을 것이다.
1983년 보물 745-1호로 지정된 『월인석보』 권1~2 초간본은 2007년 감정 방송 ‘TV쇼 진품명품’에 당시 서강대학교 총장이 출연해 일반에 공개하였고, 그때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감정가와 함께 “소중한 자산인만큼 쉽게 가격을 책정할 수 없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월인석보』가 한글의 탄생을 담은 중요한 보물이라는 것이다. 글은 쓰는 사람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글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생각이 이어지고,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선조들이 익숙한 한문에서 벗어나 한글 창제라는 새로운 도전을 한 것도, 한글을 없애려는 핍박에서 그것을 지켜낸 것도 민족의 생각과 정신을 담는 ‘우리만의 글’이 반드시 필요하며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월인석보』라는 한글 사료의 보존을 통해 우리는 오랜 세월을 넘어, ‘누구나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 있다’는 한글의 가치와 창제 의의를 이해할 수 있다. 간행부터 지금까지 몇백 년간 유물을 보전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 덕분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어 내고, 그 한글로 『월인석보』를 쓰고, 세월을 넘어 보존된 『월인석보』가 도서관에 도착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우리 글의 가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라 감히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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