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당국의 언어 사용이 매우 신중해졌다. 의미가 모호한 ‘위드 코로나’ 대신 ‘단계적 일상 회복’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다른 부처에도 요청하였다고 한다. 전부터 그랬어야 했다. 국민 가운데 외국어 약자들이 공적 정보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리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 전까지 방역 당국에서는 코호트 격리, 드라이브 스루, 팬데믹, 포스트 코로나, 트래블 버블, 부스터 샷 등의 말을 썼다. 방역 당국이 먼저 꺼냈든 언론에서 먼저 쓰기 시작했든 간에 코로나19 관련 외국어 사용은 코로나 사태의 진면목과 방역 대책을 파악하는 데에 걸림돌이었음에도 뼈저리게 다가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라는 말 앞에서는 국민의 오해를 불러 방역에 긴장이 풀어질 위험이 있다는 점을 느끼고 이 말 대신 일부러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용어 사용을 선택한 것이다. ‘일상 회복’이 ‘위드 코로나’보다 낯선 말이라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말이 의미가 분명해서 공공언어로서는 매우 적합하다. 코로나 사태로 정신없는데, 말 가지고 뭘 자꾸 따지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누구나 잘 알아듣게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방역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 우리말 써야 한다는 민족 감정에서 나온 게 아니다. 어디서든 일을 잘하려면 듣는 사람에게 쉽고 편한 말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제 버릇 남 주기 어렵다고, 2021년 10월 중순에 일상 회복 지원위원회가 출범하면서는 곧 일상 회복 로드맵을 발표하겠노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로드맵’이 공무원들이나 기업에서는 많이 쓰는 말이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쉽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티앤오 코리아의 조사에 따르자면, 일반 국민 34.6%는 ‘로드맵’이 어렵거나 전혀 모르는 말이라고 응답했고, ‘로드맵’ 대신 ‘단계별 이행안’이라는 우리말로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답한 국민은 58.7%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느껴져 나는 매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에 위원회에서는 ‘로드맵’ 대신 줄곧 ‘이행 계획’으로 쓰고 있다. 얼마나 말이 편해지고 분명해지는가?
그러나 언론인들은 국민의 편안함보다는 자기네 명예, 아니 사회적 위신이 더 중요한가 보다. 잘 들어보면 요즘 언론에서는 ‘이른바’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쓴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 이른바 부스터 샷’하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엔 마구 외국어를 쓰다가 국민의 눈총이 느껴지면 슬그머니 그 앞에다 ‘이른바’를 붙인다. 자기가 먼저 주체적으로 한 말이 아니고 남들이 이렇게 부르니 어쩔 수 없이 인용해서 부른다는 식으로. 자기는 책임 없다는 투다.
대체로 방역 당국에서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부스터 샷’이라는 말도 ‘추가 접종’으로 바꾸었고, ‘코호트 격리’도 ‘동일집단 격리’로, ‘트래블 버블’은 ‘여행 안전 권역’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 그런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언론인이다. 그들은 왜 말을 바꾸지 않아서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까? 자신들은 불편한 거 전혀 모르겠다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입에 달라붙은 외국어를 그냥 떼어내기가 쑥스러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그래선 안 된다. 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사실, 예전엔 대개들 ‘소위(所爲)’라고 했는데, 지금은 다 ‘이른바’로 바뀌었다. 물론 그냥 바뀐 건 아니다. 딱딱한 느낌이 권위주의 분위기 피운다고 수많은 시민이 지적하니까 한 20년 사이에 ‘소위’라는 말은 거의 다 사라지고 모두 ‘이른바’로 바뀌었다. 쉬운 말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바뀌어 가는 말이 있는 법이다. 말로 살아야 하는 언론인들이 그 주체가 되면 좋겠다. 이젠 ‘이른바 병’ 좀 털어내자.
이 글은 동아사이언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0795)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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