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최지혜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8. 9. 28.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전시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 소개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최지혜 기자
jihye0852@naver.com


국립한글박물관은 7월 19일부터 10월 14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해부한 교과서인 『해부학』을 소개하는 기획특별전이다.

                                     ▲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전시가 열리는 국립한글박물관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계승하고 한글의 문화적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2017년 10월 9일 한글날에 개관하였다. 한글 분야에 대한 다양한 교육, 체험 활동과 전시를 계획해오고 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에 자리잡고 있는데 근처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 전시시설은 크게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의 전시 공간과 한글놀이터와 한글 배움터의 체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 국립한글박물관의 전경


1906년, 한국 최초로 해부학 교과서가 한글로 번역되었다. 근대 서양의학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몸에 대한 최초의 한글 전문 해설서, 제중원의 『해부학』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개화기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를 통해 낯선 서양의학이 몸에 대한 우리말과 전통적 사고, 나아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바꿨는지 살펴보았다.

                  ▲ <나는 몸이로소이다> 특별전시장 입구 모습


전시는 1부 ‘몸의 시대를 열다’, 2부 ‘몸을 정의하다’, 3부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몸의 시대를 열다’에서는 몸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 서양의학의 관점을 비교하고, 근대 서양의학이 어떻게 들어오고 퍼져 나갔는지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근대 서양의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1876년 조선이 개항한 이후부터이다. 전통의학과 근대 서양의 의학은 몸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접하며 사람들은 몸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게 되고 마침내 새로운 몸의 시대가 열렸다.
서양의 외과 치료는 사람의 몸을 열고 아픈 부위를 직접 고친 후 다시 꿰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동양에서는 몸과 마음(즉 정신)을 하나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와 달리 근대 서양에서는 몸은 물질에 그칠 뿐, 몸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개화기에 접어들어 서양의학을 만나면서 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몸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부 ‘몸을 정의하다’에서는 한글 창제 이후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글의 변화를 선보인다. 몸에 관한 우리말과 문화, 그리고 새롭게 생겨나거나 사라진 말들을 더불어 알아볼 수 있다. 우리말의 몸 이름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한국인 고유의 사고와 문화가 담겨 있다. 서양의 지식인 해부학이 들어온 이후, 몸에 대한 관점은 바뀌었고 몸 이름은 변화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골격계’, ‘소식계’ 등과 같이 서로 연관된 각 부분을 함께 묶어 설명하였다. 몸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통적 사고방식을 간직하고 있는 말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의 전통적 의학 관점에서 눈, 코, 입, 귀 등이 몸속 기관과 연관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몸속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얼굴에 드러나기도 하는데, 우리말에서는 ‘안색이 창백하다’, ‘낯빛이 어둡다’ 등의 얼굴색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몸속 기관 표현에 음양오행의 원리도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간과 쓸개는 오행 중 ‘목기’에 해당한다. ‘간이 콩알만해졌다’, ‘간이 부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등의 표현은 ‘목’이 용기와 배짱, 결단력을 나타내는 것과 관련된다. 해부학이 들어온 이후 몸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말이 생겨나도 여전히 이전의 사고가 반영된 표현이 남아있는 것이다.
개화기에 새롭게 들어온 한자어 용어에 밀려 이전에 썼던 말이 사라지거나 의미가 바뀌기도 하고, 새롭게 들어온 한자어보다 이전의 고유어 표현이 더 활발하게 쓰이기도 한다. 눈, 코, 입, 귀와 관련해서는 이전에 쓰이던 말과 새로운 말이 공존한다. 이전에 없던 ‘홍채’나 ‘수정체’ 등은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안검’과 같이 어려운 말은 쉬운 기존 표현 ‘눈꺼풀’이 더 활발하게 쓰인다. 피부 관련 우리말은 나중에 들어온 한자어에 밀려 고유어가 사라지거나 쓰임이 줄어든 경우가 많다. ‘ᄉᆞᆯ’, ‘가죽’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둘이 합해진 ‘살갗’이나 한자어 ‘피부’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다. 우리말 체계에 뒤늦게 합류한 ‘모발’과 ‘모공’도 고유어 ‘머리털’과 ‘털구멍’ 등의 쓰임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손발톱’의 경우에 한자어 ‘조갑’이 아닌 ‘손톱’, ‘발톱’이 더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몸속 기관 이름에서 한자어의 세력이 커지며 옛 고유어가 사라지거나 의미가 변한 예로 또 ‘부아가 난다’라는 말에서 ‘부아’를 들 수 있다. ‘부아’는 폐를 가리키던 옛말인데, 한자어의 세력이 커지며 원래의 장기 이름으로 쓰이지 못하고 의미가 변화하였다.

 

3부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에서는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었음에도 결국 우리말로 해부학 교과서를 펴낸 김필순과 에비슨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생생하게 담아내 보여준다. 이와 함께 제중원 『해부학』의 언어적 특성과 가치도 소개한다. 한국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는 1906년 대한황성제중원에서 펴낸 『해부학』 권 1-3이다. 일본의 이마다 쓰카누의 『실용해부학』 권 1-3을 김필순이 번역하고 에비슨(Oliver R. Avison)이 교열하여 완성한 것이다. 에비슨은 제중원의 의사이자 교수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해부학을 좀 더 쉽게 가르치기 위해 한국인 조수이자 제자인 김필순과 함께 처음에는 그레이(Henry Gray)의 『아나토미(Anatomy of the Human Body)』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글로 썼지만, 완성된 원고가 불타 없어지는 등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결국, 세 번째로 번역할 때 대상이 된 책이 이마다 쓰카누의 『실용해부학』이었다. 『해부학』을 비롯해 『신편화학교과서(무기질)』(1906), 『외과총론』(1910) 등 많은 한글 의학 교과서들은 비록 사용된 기간은 짧았지만 낯선 서양의학을 우리의 지식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오늘날 ‘세포’, ‘신경’과 같은 몸 관련 어휘와 지식은 이제 자연스레 우리 생활 속 기초 상식으로 자리 잡아 사용되고 있다.

                                   ▲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전시장 출구 쪽에 이번 전시의 의의를 집약적으로 드러내 주는 글이 있었다.

                  ▲ 전시장 출구 쪽 쓰여 있는 문구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우리말의 질서와 구조에 맞게
옮겨 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는
어려운 의학용어는 일본의 한자어를 사용했지만
서양의학의 낯선 개념을 우리말글로
쉽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식 한자어로 바꾸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한자를 함께 적으며
우리말로 서양의 지식을 받아들이고자
수차례 고민하고 노력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오늘날
110여 년 전 그들처럼
한글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우리말을 풍성하게 만들려는 열정과 노력을
이어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서구의 새로운 지식을 우리말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새말을 무수히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제중원의 『해부학』은 일본 원서의 한자어들을 수용하였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우리말에 없는 새로운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과 노력이 여실히 담겨 있다.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를 소개하는 <나는 몸이로소이다> 전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몸에 관련한 우리말의 재미를 느끼고 그 가치를 생각하게 해준다. 새로운 말과 생각을 실어 나르는 도구인 한글. 한글이 있기에 우리말로 바꾸어 적으려는 고민과 노력이 더욱 컸던 것이 아니었을까?

 

10월 1일 오후 3시 제중원의 『해부학』을 주제로 한 대중 강연회가 열린다. 강연회는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와 연계되어 진행되는 행사로, 강연자는 대한의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해부학 분야의 권위자, 박형우 연세대학교 해부학 교실 교수이다. 이번 기획 전시와 함께 열리는 강연은 새로운 말과 생각을 실어 나르는 도구였던 근대의 한글이 해부학과 같은 전문 분야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한글박물관 누리집(http://www.hangeul.go.kr/)의 ‘교육·문화행사>특별강연>전시연계’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온라인 사전 신청과 현장 접수를 통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