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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말] 57. ‘프리 플로팅’보다는 ‘자유 주차 방식’으로

by 한글문화연대 2023. 11. 2.

새로운 밀레니엄이 막 시작되던 2000년,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접속(접근)의 시대(The Age of Access)』라는 책을 펴냈다. 국내에는 ‘소유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미래는 더 이상 물질을 ‘소유’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접근(접속)해서 ‘임대’하는 ‘공유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실로 접속과 공유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 ‘탈 것’의 공유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무료 자전거 ‘따릉이’를 비롯한 공유 자전거, 전기 킥보드 등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프리 플로팅(free floating)’이라는 낯선 외국어도 자주 눈에 띄고 있다.

프리 플로팅이란 공유 자전거나 킥보드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지정된 전용 구역이 아니라 불특정한 장소에서 빌리고 반납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자동차 공유업체 관계자가 <데일리임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차고지 제한 없이 차를 마음대로 갖다 놓고 빌리는 ‘프리 플로팅(Free-Floating)’이 가능하도록 카셰어링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라며 이 용어를 처음 소개했다.

이후로 관련 업계에서는, 이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하며, ‘도킹(혹은 도크) 방식’ 즉 전용 주차 지역이나 거치대에서 탈 것을 반납하는 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도크리스(dockless)’라는 외국어도 함께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프리 플로팅’은 주차 방식을 일컫기 위해 만들어진 전문 용어가 아니다. 원래는 ‘걷잡을 수 없다’, ‘자유롭게 떠다닌다’라는 뜻으로 폭넓게 쓰이는 형용사다. 사전에서 용례를 찾아보면 주차가 아니라 오히려 금융 용어로 검색된다. ‘마음대로 요동치는 환율’이라는 뜻이다(옥스포드 영한 사전).

뜻을 검색해 봐도 ‘특별한 목적이나 방향이 없이 떠다닌다’라는 정의가 나와 있고(미리엄 웹스터 사전), 용례로는 개구리밥이나 부레옥잠 같은 부유 식물, 컴퓨터 디스플레이, 떠돌이 행성 등에 사용된 경우가 검색된다.

물론 영어권 누리집에서도 주차와 관련해 이 용어를 쓴 경우를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많은 용례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처럼 ‘주차 전문 용어’로서 배타적으로 쓰지 않는다. 영어권의 사용 범주와 우리 언어사회의 주요 쓰임새가 일치하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프리 플로팅을 우리말로 다듬는 이번 작업에서는 영어 단어의 뜻에 일대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쓰임새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노력했다. 기존 우리말 다듬기 작업에서 ‘프리(free)’를 주로 ‘자유’, ‘무료’로 다듬은 반면, 이번에는 다양한 시도를 해본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새말 모임이 1순위로 올린 후보 말은 ‘유연 반납제’이다. ‘빌렸던 것을 반납한다’라는 의미를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주차’ 대신 ‘반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를 좀 더 우리말로 풀어쓴 ‘어디서나 반납’도 후보 말로 함께 올렸다. 물론 ‘자유’라는 핵심어를 활용한 후보 말도 정했으니, ‘자유 주차 방식’이 그것이다. 현재 ‘프리 플로팅’이 모든 임대나 탈 것 이용에 국한돼 쓰이는 데다 ‘반납’뿐 아니라 ‘빌리는’ 행위도 함께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차’를 사용했다. 이 외에도 ‘아무 데나 반납’, ‘마구 주차’, ‘비지정 주차’, ‘임의 (구역) 반납’, ‘자유 거치 방식’ 등의 표현이 토론 과정에서 오가기도 했다.

이중 여론조사에서 언중들이 선택한 표현은 ‘자유 주차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프리(free)’라는 단어의 영향력이 강하기도 할뿐더러, 기존 언론에서도 ‘프리 플로팅’의 우리말 풀이로 ‘자유’라는 표현을 많이 썼기에 익숙한 면도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과거 언론에서 사용한 우리말 병기로는 ‘자유 거치 방식’(<국제신문> 2021년 4월, <매일경제> 2023년 3월), ‘자유로운 반납주차/이용’(<비즈한국> 2023년 6월), ‘자유 반납방식’(<한국경제> 2021년 11월) 등이 있었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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