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이원석 기자
lemonde@khu.ac.kr
한때 영화계에서 애국심을 유도하는 소위 ‘국뽕’ 주제는 흥행 공식 중 하나였다. 대표적으로 영화 ‘명랑’과 ‘국제시장’이 있다. 두 영화는 모두 탄탄한 연출과 애국 서사로 천만을 훌쩍 넘기며 경쟁력을 증명했다. 반면 ‘자전차왕 엄복동’처럼 별다른 주제 의식 없이 ‘국뽕’에만 의존한 내용 전개로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영화 ‘말모이’는 전자에 해당한다. ‘말모이’는 일제가 우리말을 금지했던 1940년대,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흥행몰이에도 성공했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은 7월 6일과 22일 두 번에 걸쳐 언론사 ‘이데일리’와 함께 영화 속 시대정신을 계승하는 ‘말모이’ 활동을 진행했다. 20대의 시선으로 무분별한 인터넷 신조어나 생활 속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걸 목표로 한 활동을 했다.
처음은 요리를 시작하기 앞서 재료를 손질하듯 다듬을 단어를 선별하고 의미를 파악했다. 순화 작업 중 가장 큰 문제는 신조어 특성상 여러 단어와 유행이 혼재해 쓰는 이조차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하울(haul)’이라는 단어는 ‘끌다’라는 본뜻으로는 전혀 유추할 수 없게끔 제품 개봉과 사용 후기를 전달하는 의미로 쓰여 난해했다.
다음으로 일상 외래어는 이미 널리 쓰이는 만큼 새로운 말을 만들기보다 기존 대응어가 잘 어울리는지 먼저 파악했다.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직관적으로 의미를 떠올리기 쉽고 우리 정서와 어울리는 방향으로 만들고자 했다. ‘스크린 도어(screen door)’를 ‘안전 문’으로 순화한 사례를 모범으로 참고했다.
이번 활동에서는 순화어를 만들 때 두 가지 큰 기준을 두고 구상했다. 첫째는 순화어로 대체해도 일상에서 어색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즉시성’. 둘째는 사회 각 분야에서 모든 세대가 아울러 쓰는 말인지 따지는 ‘범용성’이다.
‘즉시성’에서는 지금 여러 순화어가 가진 한계를 고려했다. 이미 대다수 외래어를 우리 말로 순화하는 작업을 거쳤지만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외래어가 너무 친숙한 경우다. ‘통컵’을 순화어로 둔 ‘텀블러’가 대표 사례다. 다음은 순화어가 한 번에 와닿지 않을 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리클라이너’를 ‘각도 조절 푹신 의자’로 대체했지만 의미를 모두 전달하려다 보니 단어가 기존 낱말보다 늘어져 말하기 번거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범용성’은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된 세대 갈등을 고려했다. 회의에 참석한 다수가 디지털 문명과 친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이 새로운 기술과 심리적으로 더욱 멀어지는 이유로 낯선 단어를 꼽았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처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대상을 영어 단어 그대로 소화하기엔 당연히 어려움이 따른다. 다행히 ‘키오스크’는 ‘무인 단말기(안내기)’로 순화어가 단순하고 명확하다.
이 두 가지 기준으로 회의에서 선별한 대표 순화어를 몇 개 소개하겠다. 신조어 ‘워케이션(worcation)’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을 합친 신조어다. 장기간 여행지에 머무르며 일을 하는 업무 형태로, 단어를 합성한 의도에 맞게 ‘휴일터’로 바꿨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기존 순화어 ‘최소주의’가 이제는 특정 사상을 일컫기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점을 고려해 ‘아담살이’로 순화했다.
물론 두 번의 ‘말모이’ 활동에서 극적으로 많은 단어를 바꾸진 못했다. 당연히 모든 활동은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진행해야 의미가 있다. 영화 ‘말모이’ 배경처럼 우리말이 탄압받는 시대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말은 가꾸고 지켜야 할 대상이다. 오히려 일제처럼 드러난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가벼이 여기고 쉽게 변형하는 사고방식이 더 위험하다. 계속해서 기록하고 고쳐가자. 우리말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 우리 민족이 치열하게 지켜온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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