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ᄊᆞ미 3부 ― 노랫말의 바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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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강지수 기자
kjs46240@naver.com
2부에서는 줄이고 늘리기, 앞뒤 비슷하게 만들기 등 우리 노랫말의 운율을 만드는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외국곡 선율에 우리 노랫말을 붙이거나, 외국곡 가사 중 일부 단어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바꾸는 방법도 있다. 현인의 〈베사메 무초〉, 서수남·하청일의 〈팔도유람〉, 조영남의 〈최진사댁 셋째 딸〉 등의 ‘번안 노래’가 그것이다.
▲ 현인, 〈베사메 무초〉의 음반과 가사
(국립한글박물관 전시회 〈노랫말, 선율에 삶을 싣다〉 중에서)
그러나 이제 번안 노래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가요는 조금씩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해 이제는 ‘케이팝’이라는 하나의 갈래로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실제로 국제화 시대 속 한국 대중가요의 위상은 어디쯤이며 미래의 우리 노랫말은 어떻게 바뀔까. 그리고 앞으로 우리 노랫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세계 속 우리 노래
2019년 11월, 미국 음악잡지 《빌보드》에서 ‘2010년대 최고의 케이팝 100곡’ 목록을 발표했다. 100곡 전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의 노래들처럼 공식 빌보드 순위에 오르지는 않았으며 이 목록이 한국 노래의 유명세를 전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 노래의 개성을 충분히 인정하며, 한국의 음악 산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 단순히 인기 있는 한류 아이돌들의 노래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혁오·선우정아·에픽하이·서태지 등 개성 있는 가수들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해볼 만하다.
그런데 빌보드 측에서 노래에 관해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면, 주로 가사보다는 선율과 박자 또는 가수 자체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가사 내용을 언급한 건 100곡 중 방탄소년단의 ‘봄날’, 에프엑스의 ‘4 Walls’, 인피니트의 ‘추격자’ 등 3, 4곡 정도로, 그마저도 짧게 짚고 넘어간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중가요 가사는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인지되고 있으며, 그것이 주목받을 가능성은 얼마일까. 우리 노랫말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알아보기 위해 세 분을 모셨다.
“솔직한 감정과 삶을 담은 노랫말이 좋다”
세계인이 바라보는 우리 노랫말에 대한 의견을 직접 듣고 싶어 러시아에서 귀화한 방송인 일리야 씨(Ilya Belyakov), 방글라데시·호주 혼혈인 대학생 앤드류아 씨(Andrua Haque), 그리고 멕시코인 미겔 씨(Miguel Siller) 세 분을 각각 서면 인터뷰로 모셨다. 일리야 씨(이하 일리야)와 앤드류아 씨(이하 앤드류아)는 우리말에 유창하고 한국에 거주 중이며, 미겔 씨(이하 미겔)는 우리말에 서툴고 멕시코에 거주 중이다. 우선, 우리 노랫말을 어떻게 느끼는지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 2000년대 초반 또는 한국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대중가요의 가사가 어떻게 변해온 것 같습니까? 내용, 느낌 어느 측면이든 자유롭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일리야: 저는 한국 노래 가사들이 딱히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갈래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노래의 90% 이상은 사랑·연애·이별 등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가사들도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어 노랫말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앤드류아:이전보다 가사에 영어가 더 많이 쓰입니다. 최근에는 스페인어와 같은 다른 외국어들도 쓰이는 것 같습니다.
미겔: 한국 노래 가사는 최근 몇 년간 변화해온 것 같습니다. 요즘 음악가들은 이전보다 노래 가사에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 자신의 나라 또는 다른 나라 노래와 비교했을 때 한국 노래 가사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리야: 러시아 노래는 한국 노래보다 운율이 두드러집니다. 그 외에 차이점은 잘 모르겠습니다.
앤드류아: 특히 발라드에서 슬픔을 굉장히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행복해도 발라드를 들을 때면 저절로 슬퍼지거든요.
미겔: 물론 이야기하는 방식의 노래도 있지만, 한국 노래는 다소 절과 후렴이 노래 내내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노래와는 가사보다 주로 표현방식과 선율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 인상 깊었거나 좋아하시는 한국 노랫말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리야: 가수 지오디(god)의 ‘길’을 가장 좋아하고, 이 노래의 가사 역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사랑·연애 이야기보다 좀 더 깊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노래가 주는 느낌이 좋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악플러(악성 댓글을 반복적으로 쓰는 사람들)들을 상대하거나 자신의 인생관을 나타내는 등, 가수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이런 면에서 가수 화사의 ‘마리아’나, 한현우의 ‘돌덩이’ 가사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앤드류아: 이승철의 ‘서쪽 하늘’ 중 ‘비 내린 하늘은 왜 그리 날 슬프게 해 흩어진 내 눈물로 널 잊고 싶은데’ 부분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슬픔, 눈물 그리고 자연을 연결 지어 감정을 명확히 표현한 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미겔: 저는 화사 ‘마리아’의 노래 가사가 좋습니다. 특히 1절 가사요. 그녀는 연예계에서 어떻게 비난받아왔었는지에 관한 자신의 느낌을 노래로 만들어 표현함으로써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도 우리처럼 보통의 인간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노랫말로 관심받기는 다소 힘들 것…”
이번에는 세계 속 한국 대중가요의 위치와 우리 노랫말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아래가 그 일문일답이다.
- 다소 아이돌 가수의 노래로 한정된 듯하지만,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점점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세계 속에서 한국 노래가 어떤 위치에 서게 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더불어, 세계인들이 한국 노래에 관심을 두게 되는 통로가 특정 가수나 선율이 아닌, ‘노랫말’이 될 수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일리야: 저는 현실적인 사람으로서, 케이팝이나 아이돌 문화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업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것들이 세계 속에서 좀 더 자리를 잡고 발전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신선하고 독창적인 음악을 많이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방탄소년단처럼 자신들이 쓴 가사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돌 가수가 꾸준히 나와야 하는데, 저는 조금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앤드류아: 케이팝이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외모와 의상에 해외 팬들이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세계 속 한국 노래는 외모, 옷차림 그리고 칼군무(구성원이 동작을 동시에 정확히 맞추어 춤추는 것)로 유명해질 것 같습니다. 노래 가사를 통해 세계인들이 한국 노래에 관심을 두게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겔: 한국 노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세계 곳곳에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의 아이돌들이 유명한 해외가수들과 공동 작업을 해 왔는데, 그것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노래를 더 많이 들을 수 있게 된 하나의 계기가 아닐까요. 저는 세계 속 한국 노래의 지위가 점점 높아지고, 더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다만,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노래에 관심이 생기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한국 노래가 흥미로운 선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세계인이 한국어를 몰라서 노랫말에 흥미를 바로 느끼기 어려워 자연스럽게 선율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 한국 노래에 영어 가사의 비중이 늘어나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오직 한국어 가사로만 이루어진 노래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앤드류아: 저는 영어 가사가 포함된 한국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다소 오글거립니다. 영어가 노래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틀린 부분도 많습니다. 한국어만의 매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굳이 영어를 사용해 노래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 노래가 유명해진 주된 원인에 한국어 가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수의 외모가 훌륭하고 의상이 잘 갖추어졌다는 전제하에서는 한국어로만 이루어진 노래여도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미겔: 저는 한국 노래에 영어 가사를 포함하는 것이 케이팝의 세계화를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 가사가 포함되면 세계 사람들이 노래를 더 이해하고, 노래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케이팝은 점점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 한국어 가사로만 이루어진 노래도 그 유명세를 잃지 않고 언제나 인정받게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 앞으로의 한국 대중가요 또는 노래 가사에 바라는 점이 있으십니까?
일리야: 좀 더 다양한 내용의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 외에는 딱히 없습니다.
앤드류아: 너무 유행만 따르지 않는, 자기만의 매력을 가진 노래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겔: 반복적인 구절과 후렴보다는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더 발전된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가 많이 나온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노랫말의 미래
한국 대중가요 대부분은 영어 또는 다른 외국어 가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이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외국어 가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 혹은 우리말만으로 노래를 만들어도 충분히 개성 있고 좋다는 것으로 나뉘는 모양새다. 지국현 작곡가는 이에 관해 지금 세대의 언어는 그들이 창작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전 방식의 소통으로 노랫말에 관여하고 그것을 제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서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그것 자체가 언어이기 때문에 노랫말에 외국어가 쓰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으며,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모든 지구인을 위로하고 보듬을 수 있는 가사가 쏟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상록수 2020’ 유튜브 영상
2020년 4월 19일, 4·19혁명 기념식에서는 34명의 한국 가수가 부른 ‘상록수 2020’이 흘러나왔다. 1998년 한국 외환위기(IMF) 때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한 노래 '상록수'가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 세계 의료진들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또한, 8월 21일에 발표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이후 5개월 넘게 감염병과 싸우고 있는 세계인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노래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영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노랫말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바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노래 속 언어의 쓰임이 옳거나 그른지 따지기보다, 우리는 노래가 무슨 말을 건네고자 하는지 그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 담기고 문화가 녹아들고 정서가 담긴 언어는 힘을 가졌다. 그것으로 만든 노랫말은 더 큰 힘을 가지고선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노래를 듣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절망에 빠진 곳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기도 하고, 역경 속에서 엄청난 격려가 되어주기도 한다.
가수 김광석의 ‘나의 노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어둠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노랫말이 주는 힘, 노랫말이 가지는 맛, 그리고 노랫말이 건네는 따스한 위로를 우리 모두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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