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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언택트’가 아니라 ‘비대면’입니다 - 이희승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0. 7. 8.

‘언택트’가 아니라 ‘비대면’입니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이희승 기자

h29mays@naver.com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사회의 주요 흐름이 ‘거리 두기’로 변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방문하기를 자제하는 것부터 택배를 기사에게서 직접 받지 않는 것까지 다양한 모습의 거리 두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이러한 흐름에 부쩍 눈에 자주 띄는 말이 있는데, 바로 ‘언택트’다.


‘언택트’는 한국어식 영어

 언택트는 ‘접촉하다’를 의미하는 ‘콘택트(contact)’와 부정적 의미를 더해주는 접두사 ‘언(un-)’을 합친 말로, 비대면 또는 비접촉이라는 뜻이다. 이전에도 언택트는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판매 행위나 소비 방식을 설명하는 데 주로 사용되곤 했다. 


낱말

언택트 소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무인 단말기를 두거나, 첨단기술을 활용해

직원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는 것

언택트 마케팅

손님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한

직원과 가게의 배려 방식

▲ 코로나19 사태 이전 ‘언택트’를 사용한 낱말과 뜻


 생김새와 어원이 그럴듯하지만, 사실 언택트는 한국어식 영어(콩글리시)다.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며 외국에는 이러한 말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을 딱히 설명할 말이 없어 새롭게 만들어낸 단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비대면’, ‘비접촉’, ‘거리 두기’ 등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 표현이 있고, 실제로도 꾸준히 쓰이고 있다. 즉, 굳이 언택트를 써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언론의 언택트 남용

 그런데 요즘, 언택트를 이곳저곳에서 남용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거리 두기를 하는 사회의 모습을 표현한 ‘언택트 시대’부터 언택트 관련주, 언택트 펀드, 언택트 여행까지. 이제는 ‘언택트’에 ‘온라인’ 개념을 더해 집에서 컴퓨터로 각종 활동을 즐기는 ‘온택트’라는 단어도 만들어냈다. 심지어 최근 침방울 차단 마스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한 마스크 회사에서는 제품 이름을 ‘언택트 마스크’라고 정했다.


▲ 위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삼성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의 금융상품과 <웰킵스>의 언택트 마스크


 앞서 전했듯 언택트라는 단어를 써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침방울 차단 마스크’, ‘비대면 시대’, ‘거리 두기 여행’처럼 언택트를 쓰지 않아도 기존의 우리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보통 특정 외국어 단어를 오래 쓰게 되면 입에 붙어 고치기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택트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기껏해야 기술이 발달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문제가 불거진 2~3년 전부터 시작됐고,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대중적으로 쓰는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에서도 버젓이 언택트를 쓰고 있다. 


언론사

제목

날짜

한국경제

반도체·인터넷·바이오포스트 코로나 시대 언택트 펀드뜬다

2020.6.9.

국민일보

코로나로 답답하면 단양으로언택트 관광지 주목

2020.6.11.

동아일보

코로나 시대, 언택트 헬스케어 각광안마의자 판매량 증가

2020.6.13.

한국일보

언택트 이동수단 전기자전거, 꼼꼼히 고르세요

2020.6.13.

연합뉴스

집 밖은 위험해코로나19가 바꾼 일상 언택트 사회

2020.3.17.

채널 에이

나 혼자 영화 본다언택트 시네마확대

2020.4.28.

와이티엔

대면 접촉 최소화”...‘언택트서비스 붐

2020.5.23.

▲ 언론사의 인터넷 기사와 뉴스 제목에 등장한 ‘언택트’


언택트 사용은 국민의 알 권리 침해

 언택트가 ‘재벌’처럼 우리나라의 특정 현상을 반영한 하나의 새로운 영어단어로 굳어져 쓰이게 되었다면 한국인들의 비상한 단어 형성 능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19 사태에 사람들끼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아니다. 언택트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모습은 외국어 신조어를 남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언택트는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하기 어려우며, 여기저기에서 쓰다 보니 뜻이 분명하지도 않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대면, 비접촉, 거리 두기 이 세 가지는 의미가 조금씩 달라서 쓰이는 상황도 달라진다. 그러나 언택트는 이러한 단어들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표현하고 있다. 특히 언론에서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전달할 때도 언택트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의미가 불분명한 말을 계속 주입하게 되고, 이는 곧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부정확한 외국어 신조어를 계속 써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특정 시기에 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의 의미와 뿌리를 일일이 충분하게 살펴보기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언론이라면 그렇지 않다. 국민의 알 권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유행하는 말이라고 해서 무작정 가져다 쓰는 것은 어쩌면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이 누군가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정확한 뜻을 담고 있는지 따질 수 있는 꼼꼼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언택트’라는 말보다는 이해하기도 쉽고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와 상황에 맞게 ‘비대면’. ‘비접촉’ 또는 ‘거리 두기’ 등 적절히 바꿔쓰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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