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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문화, 학술

국제쉬운언어협회 2019대회 한국 사례 발표(국문)

by 한글문화연대 2019. 11. 22.


한국의 쉬운 언어 운동, 시민의 알 권리와 안전을 지킨다.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


I. 한국어와 한글


1. 한국어의 현황

한국어는 한국의 유일한 공용어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만을 사용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5천만 명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천 5백만 명 등 모두 8천만 명가량이다. 사용 인구수로 세계 13위 규모이다. 


2. 한국어의 역사

한국어는 5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지금까지 1천 년 넘게 한국어만 사용하는 국가를 유지하였다. 한국어에는 19세기 이전까지 중국에서 들어온 단어와 19세기 이후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가 많다. 이 단어들은 모두 중국의 문자인 한자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세 나라의 언어는 완전히 다르며, 같은 단어일지라도 발음이 몹시 다르다. 


3. 한국의 고유한 문자, 한글

한국어 사용자들은 1443년에 조선의 세종 임금이 만든 ‘한글’이라는 문자를 사용한다. 세종은 당시에 주로 쓰던 중국 문자인 한자가 한국어와 어울리지 않고 배우기 어려워서 백성이 제 뜻을 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정을 안타까이 여겨 한글을 만들었다. 한글은 15세기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인권’의 문자이다. 한글문화연대는 세종의 인권 정신에 바탕을 두고 쉬운 언어 운동을 펼치고 있다. 


4. 한글의 창제 원리

오늘날의 한글은 자음 14자, 모음 10자이다. 하나의 음절을 초성과 중성과 종성 셋으로 쪼개 적되, 네모꼴 안에 모아 쓴다. 한글의 자음은 성대와 혀와 이빨, 입술 등 발성 기관의 모양을 본따 디자인하였으며, 모음은 하늘과 사람과 땅을 기본으로 디자인한 뒤 이들을 조합하여 양성 모음과 음성 모음을 만들었다. 


5. 한자에서 한글로

한국의 귀족(양반)들은 한글 사용을 반대하였던지라 19세기 말까지는 공용문서에서 중국 문자인 한자를 주로 사용하였다. 19세기 말에 한글이 나라의 공식 문자로 지정되었으나, 20세기 들어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는 바람에 한국어와 한글을 쓰지 못하도록 탄압받았다. 

1945년에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뒤로 일본어 찌꺼기를 버리고 한자 대신 한글만 사용하려 애썼다. 하지만 한글전용이 이루어지기까지는 60년의 세월이 걸렸다. 1970년대에 교과서에서, 1990년대에 일간신문에서, 2000년대에 공문서에서 한글전용이 자리를 잡았다. 


Ⅱ. 한국어의 모호한 말


6. 한국의 어려운 말

오늘날 한국의 언어 상황을 보자면, 단어 사용에서는 한국어 단어가, 문자 사용에서는 한글이 주를 이룬다. 그렇지만 법률 등에 남아 있는 어려운 한자어와 모든 분야에서 늘어나는 영어 단어 및 로마자 표기가 소통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영어 단어의 불필요한 남용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7. 어려운 법률 용어

법률과 행정 용어에서 일본어투 한자어를 쉬운 한국어로 바꾸는 일이 1945년부터 꾸준히 이루어졌다. 2005년 이후로는 알기 쉬운 법령을 만들려는 정부의 노력이 시작되어,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법률을 한글전용으로 바꾸어 쓰고 쉬운 말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민법과 형법 등 주요 법률에는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은 법률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8. 세계화 정책과 영어의 태풍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대외 개방 정책, 세계화 정책과 함께 영어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주 1~2시간씩 영어 수업을 하기 시작하였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주장도 나왔다. 대학 입학에는 그 이전에도 영어 성적이 중요한 요소였으나,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취업과 승진에서도 영어 점수가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국은 수출 중심 산업 구조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1998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시장 개방의 요구가 더 거세어졌기 때문에 영어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도 나날이 강해졌다. 


9. 한국어 단어를 몰아내는 영어 단어

인터넷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2000년대에 들어서 정보통신 산업, 마케팅, 광고, 컨설팅, 금융, 텔레비전 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영어 단어를 한국어 단어 대신 사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학자와 공무원도 대폭 늘어났다. 이들 여론 주도층이 영어 단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자 신문과 방송에서도 영어 사용이 늘어난다. 이런 추세는 산업 분야에 그치지 않고 안전과 복지, 경제, 정치 분야로 퍼지고 있다. 


10. 영어 남용의 문제점

영어는 문장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한국어 문장 속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용어로, 새로움을 드러내는 용어로 단어 차원에서 사용된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핵심 단어를 영어로 쓰는 경향이 늘어간다. 의미가 분명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이목 끌기 목적으로 쓸 때도 많다. 그렇지만 중년층과 노년층에는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많다. 영어를 배웠더라도 장기간 사용하지 않아 영어 단어가 섞인 문장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한국어와 영어는 전혀 다른 언어이고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매우 적기 때문에 영어 교육의 효율은 높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영어 단어는 한국인에게 어려운 말이다. 


11. 쉬운 언어 사용 법제화

국어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5년에 국어기본법을 제정하여 공문서에서는 반드시 한글로 적을 것을 규정하였다. 하지만 한글로 적었더라도 단어는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2017년에 법을 개정하여 공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use, compose) 한다.”고 보완하였다. 


Ⅲ. 한국의 쉬운 언어 운동


12. 한국 정부의 쉬운 언어 사용 노력

국어 정책을 세우는 문화체육관광부 밑에 연구 집단 성격의 국립국어원이 활동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언어 현황을 분석하고 국어사전을 만들며, 언어 자원을 디지털 데이터로 관리하고 외국어 신조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일을 한다. 공무원에게 어문 규범과 쉬운 언어 사용의 필요성을 교육하고 국민들의 질문에 전화와 온라인으로 답을 해준다. 국립국어원의 활동은 일반 언중에게 규범적 영향력이 강한 편이나, 기업과 정부 공무원, 언론 등에는 영향력이 잘 미치지 않는다. 특히 어문 규범 분야에서는 권위를 인정받지만 쉬운 언어 분야에서는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3. 민간의 쉬운 언어 운동

한국의 쉬운 언어 운동은 주로 민간에서 이끌어왔다. 1945년 해방 뒤 1990년대까지는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과 과거의 문헌에서만 나타나는 낯선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 중요했다. 일본어 찌꺼기를 몰아내는 일은 민족 자주권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 일은 ‘한글학회’라는 학자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외국어, 특히 영어 단어의 남용이 주요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를 쉬운 말로 바꾸는 일은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에서 주도하고 있다. 


14. 민족주의적 국어 운동에 대한 경계

1990년대까지는 한국어가 한국 민족의 것이므로 일본어나 영어 대신 한국어를 써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견해가 영향력이 강했다. 이런 견해는 세계화를 선호하는 일부 국민에게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특히 1970년대에 독재 정치를 펼친 군사정권이 권력 유지에 민족주의를 이용하고자 ‘외국어 정화’를 강제로 추진하였기에 ‘언어 정화’에 대한 반감이 남아 있다. 이런 반감이 외국어 남용을 더욱 부추긴다. 한글문화연대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쉬운 언어 운동의 뿌리를 둔다. 


Ⅳ. 한글문화연대의 활동


15. 쉬운 언어와 국민의 인권

한글문화연대는 공공언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데에 주력한다. 공공언어는 시민의 안전, 재산, 권리, 의무, 기회, 손해 등을 다룬다. 공공언어는 주로 정부에서 만들어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정부와 언론의 언어 사용을 관찰(모니터링)하고 고쳐 나간다. 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모든 제도와 법률, 정보에 대한 ’알 권리‘는 쉬운 언어를 통해서만 충족된다. 또한, 시민은 어떠한 경우라도 외국어 구사 능력 때문에 공적 공간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어려운 언어 앞에서 시민은 존엄을 훼손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알 권리와 평등권은 우리가 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인간적인 이유이다. 


16. 쉬운 언어와 시민의 안전

어려운 말은 우선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암초 노릇을 한다. 2017년에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안전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웹 문서와 워드 문서 800종, 위험 알림 메시지 등을 조사하고 국민의 신고를 받아 어려운 안전 용어 133개를 뽑았다. 이런 용어는 법률과 표지판, 안내 방송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였으나 현재까지 고친 것은 10% 남짓이다. 공무원들의 무관심, 법률 수정의 어려움이 가장 큰 장벽이다. 2019년 8월 30일에 한글문화연대는 법률에 들어 있는 어려운 안전 용어 54개를 쉬운 말로 바꿔 달라고 정부에 다시 제안하였다.


17. 안전 용어 개선의 사례

“Green Food Zone”이라는 로마자 표현은 초중고 학교 주변에서 위생에 문제가 없는 음식만 다루라는 알림 표지판이다. 영어로는 뜻이 분명할지는 모르나 한국인에게는 ‘초록 색깔의 채소 따위 음식’인지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이 법률 밑의 시행 규칙에 들어간 바람에 공무원들은 바꿀 수 없다고 답한다. 서울시 지하철의 문이 열릴 때 안전을 위해 덧댄 투명한 문이 함께 열리는데, 이를 ‘screen door’라고 영어로 이름을 붙여 불렀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스크린’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사용하는 막이었으므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말을 한국어 ‘안전문’으로 바꾸는 데에도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 말 역시 정부에서 제정한 규칙에 들어 있어서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땅이 꺼지면서 만들어진 구멍을 영어인 ‘sink hole’로 표현하는 언론과 공무원에 맞서 우리는 지금도 매우 열심히 싸우고 있다. 한국에서 ‘sink’는 그릇과 접시 등을 닦고 보관하는 부엌 가구에 쓰는 영어 단어인지라 땅에 생긴 구멍을 연상시킬 수 없다. 너무나도 위험한 말이다. 


18. 쉬운 언어와 시민의 행복 추구

시민의 재산과 복지, 더 좋은 삶을 누릴 기회 등을 다루는 정부의 정책 및 문서에서 점점 더 영어 단어가 늘어난다. 이는 영어 능력이 높지 않은 시민의 행복 추구권을 빼앗는다. 또한, 이런 용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시민이 정치 공론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어려운 말은 시민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음으로써 민주공화국의 원활한 운영에도 지장을 준다. “Community Care”라고 영어로 이름 붙인 복지 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한국 국민은 단 0.1%도 되지 않는다. 복지 서비스를 받아야 할 사람 중에 ‘바우처’라는 용어의 뜻을 몰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공무원들은 외국어 낱말인 ‘voucher’를 사용한다. 전화를 매개로 벌어지는 사기 범죄를 ‘voice phishing’이라고 영어로 부르는 통에 주된 피해층인 노년층에게 대처 방법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 


19. 한글문화연대의 공공언어 개선 운동

우리는 2012년부터 매년 중앙 정부에서 작성한 3개월치 보도자료 3천 건을 조사하여 쓸데없는 외국어 남용과 로마자 사용을 집계하였다. 매년 10월 9일 한글날(한글을 기리는 날)에 외국어 등 어려운 말을 많이 쓴 부처의 순위, 공무원들이 많이 사용한 외국어 단어 목록, 문서 하나마다 나오는 외국어 단어의 평균 개수 등을 언론에 발표하였다. 우리의 활동은 많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냈고, 조사 결과가 나쁜 부처의 장관과 근무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즉각적인 개선 효과를 끌어낸다. 하지만 공문서를 작성하는 공무원은 너무 많고 새로운 외국어 용어가 계속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개선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 이에 2019년부터는 중앙 정부 18개 부에서 발표하는 보도자료를 모두 조사하여 매일 그 작성자에게 수정을 건의한다. 매달 평균 1천 건의 문서를 조사하고 530건가량의 수정 요청 공문을 보낸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그런 용어를 사용한 기자에게도 전자우편을 보내 수정을 제안하고 있다. 매달 2,000건 넘는 수정 요청 편지를 보낸다. 우리는 공문서를 작성하는 공무원 개인과 언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에게 편지를 보낼 뿐만 아니라, 20여 곳의 방송사와 신문사, 정부 기관 45곳에 쉬운 말 사용을 부탁하는 포스터를 붙인다. 인터넷 홍보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20. “언어는 인권이다.”

우리의 구호는 ”알기 쉬운 말이 알 권리를 지켜줍니다.“이다. 인권을 강조하는 우리의 운동 방식은 공무원과 기자들에게 점점 더 환영받고 널리 퍼져 나간다. 그들 또한 공공언어를 다룰 때마다 언어가 시민의 인권에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것이다. 쉬운 언어 운동을 펼치는 우리의 기본 정신은 “언어는 인권이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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