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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기획)덕온공주 글씨전-3부. 윤백영, 왕실 한글을 지키고 가꾸다. - 이윤재, 서정화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9. 8. 5.

(기획기사)

덕온공주 글씨전-3부. 윤백영, 왕실 한글을 지키고 가꾸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이윤재 기자
ture0618@naver.com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서정화 기자
dimllllight@naver.com

 

 윤백영은 윤용구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연암 김씨(1873-1954) 사이에서 태어났다. 36세에 첫 딸을 얻은 윤용구는 딸에 대한 사랑이 매우 각별했다. 그는 뛰어난 한학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여러 고전과 역사서를 우리말로 번역하였고, ‘소학’ 등을 딸에게 직접 가르쳐 딸과 소통하였다. 딸과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은 2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특별했듯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 윤백영의 마음 역시 남달랐다. 당시 출판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직접 손으로 책을 옮겨 적는 때가 많았는데, 그녀는 아버지가 쓴 한글 자료를 베끼고 보충하는데 전념했다.

▲좌 - 윤용구의 ‘정사기람’ 권 1, 우- 윤백영의 ‘정사기람’ 권 19, 아버지 윤용구가 쓴 중국의 역사 ‘정사기람’ 80권 중, 윤백영이 77세 때 보충하여 채워 넣은 것이다.

 

 전시회 3부 중앙에 있는 ‘정사기람’은 윤백영의 효심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료라 할 수 있다. 윤용구가 쓴 중국의 역사인 ‘정사기람’ 80권 중 19권은 한국전쟁 이후 분실되었다고 한다. 이에 윤백영은 7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분실된 19권을 보충하여 아버지의 ‘정사기람’을 복원했다.

▲훈민가 1964년, 23.5x42.7cm, 윤백영이 어버이를 생각하며 쓴 노래. 윤백영이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 효성에 관한 노래를 쓴 것이다. 77세 때의 글씨다.

 

윤백영이 복원한 ‘정사기람’ 19권의 옆에는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에서 효성에 관한 노래가 있다. 이 역시 77세에 그녀가 직접 쓴 것인데, 글쓴이의 상상력을 가미하면 ‘정사기람’의 복원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작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밖에도 윤백영은 평생 한글을 쓰고 가꾸었다. 특히 궁과의 인연이 특별한 집안에 태어난 덕에 덕온공주의 친필 자료 등 다수의 한글 자료를 간직하고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7세 때 고종을 뵙기 위해 할머니 덕온공주의 당의를 줄여 입고 궐에 출입하는 등 어릴 때부터 궁에 드나드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왕실의 예절과 문화를 습득할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조선 왕실 문화와 한글 자료라는 소중한 기록을 남겨 후대에 전해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다음의 두 자료가 있다.

 윤백영이 남긴 한글 친필 자료는 하나하나 필체가 대단하다. 대표적으로 ‘사오돈전’과 ‘명덕황후 마씨 이야기’가 있다.

▲윤백영이 한글로 풀어 쓴 사오돈전. 윤백영이 한글로 풀어쓴 중국 동진 시대의 지혜로운 여성 사도온의 이야기이다. 윤백영의 부기에 “다른 글씨보다 정성 들여 쓴 것이니 특별히 잘 보관하라”는 당부가 적혀 있다.

▲윤백영이 한글로 풀어 쓴 명덕황후 마씨 이야기. 윤백영이 한글 정자체로 쓴 중국 한나라의 어진 왕비 명덕황후 마씨의 전기다.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된 윤백영의 한글 서예 중 유일하게 절첩본에 정자체로 쓴 글씨다.

 

 윤백영은 전통적인 궁체가 현대로 이어지는 데 가교 역할을 하였다. 이 집안에 전하는 한글 자료에는 윤백영이 10대 때부터 80대까지 꾸준히 써 온 한글 필사 자료와 서예 작품 8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조선 후기 왕실에서 글씨 쓰는 일을 전문으로 하던 궁인들의 한글 궁체와 그 뒤를 이은 윤백영의 서예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덕온공주와 그 후손들이 한글로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 부왕이 한문으로 쓴 글에 담긴 뜻을 공주가 이어받아 한글로 옮겨 쓴 사례는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덕온공주는 부모에 대한 효심과 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한글로 써 아들에게 전달했다. 한문에 능통했던 그의 아들 윤용구도 어머니의 한글 쓰기를 이어받았다. 딸을 위해서는 본받을 만한 여성의 행적을 골라 직접 한글로 써줬다. 이러한 사랑은 현대로도 이어졌다.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도 많은 한글 서예 작품을 남겨 왕실 한글 궁체의 품격을 오늘날 우리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덕온공주 가족과 후손들이 대를 이어 쓴 한글은 서로에 대한 교감과 존경의 표현이며 우리에게는 휴식과 위로로 다가온다. 얼마 남지 않았으나 8월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 한글로 더하는 가족의 정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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